가을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취재를 하려고 인천시 중구 신포동 거리를 거닐던 기자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곳’은 잘 있을까?

‘그곳’은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방문한 신포동 뒷골목 예술 공간이다. 그라피티로 독립운동 역사를 알린 청년들을 만나려고 처음 그곳을 찾았다.

형형색색 글자와 그림이 꽉 채운 공간에서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작품은 단연 돋보였다. 청년들은 인천 독립운동가들이 걸어왔던 길을 작품으로 풀어내겠다고 포부를 말했다. 

3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 발걸음을 옮긴 그곳엔 낯선 옷가게가 들어섰다. 기웃거리는 기자를 본 새로운 주인장은 손님 맞을 준비에 눈을 흘깃거렸다. 외벽에 남은 그라피티가 한때 이곳에 머무른 청년들 존재를 떠오르게 했다.

수년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서구에 간판도 없는 작은 서점을 취재했을 때다. 그곳 역시 문화 공간을 갈망하는 청년들이 스스로 만든 공간이었다. "이 동네에 오래 남길 바란다"는 주민들 말에 공감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기사를 썼다. 그 뒤로 몇 개월이 흘렀을까. 그곳 마지막 영업 소식을 메시지로 받았다.

사라진 곳들 행방을 기자는 알지 못한다. 휴대전화를 눌러 알아볼 만도 하지만 하지 않는다. 아쉬움 더 깊은 곳에 어디선가 뜻을 펼칠 그들을 향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장소는 사라졌지만 그들이 펼치려 한 신념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믿음. 더 나은 세상을 향하는 그들 눈빛과 말, 행동, 걸음은 강한 힘이 있었다.

올해 상반기에 일단락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철거 문제도 어쩌면 같은 기억으로 남을지 모르겠다. 인천산선이 재개발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지역 시민단체들은 대책위를 꾸리고 릴레이 단식에 나서며 존치를 요구했다.

시민사회 바람과 달리 일곱 차례에 걸친 협의는 결국 ‘원형 이축’으로 끝맺으며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인천산선이 지금 자리를 떠난들 그 속에 깃든 노동역사와 가치, 함께한 사람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오늘도 사람을 만난다. 그들은 피켓으로, 목소리로, 글로, 음악으로, 또 그림으로 홀로 서거나 연대한다. 간절히 바라지만 그 바람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조금씩 나아간다. 어느 곳에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때로 설 곳을 잃더라도 신념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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