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올 한글날은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 576년이다. 한글 관련 단체들이 추진하는 행사가 다양했다. 전시·공연·체험 행사 등등.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부산 동아대학교의 삼행시·사행시 백일장이다. 제시어는 ‘집현전·한글날’(삼행시)과 ‘세종대왕·훈민정음’(사행시)이었다. 한글 창제 관련 용어 선정은 알맞았으나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 전통의 ‘시조(時調)’로도 공모했다면 정녕 뜻깊은 백일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즈음 지구촌 곳곳에는 이른바 한류(韓流) 붐이 들판의 불길 마냥 피어오른다. 영어 알파벳 ‘hallyu’가 지난해 옥스퍼드사전에 등재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는 ‘한글’과 ‘시조’는 우리 한류 정신문화의 핵심 아이콘이라고 누차 말했다. 한글은 국어기본법에 대한민국 공용어로 표기되는 문자로서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라고 돼 있다. 한글의 원이름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이다. 시조는 신라 향가를 연원으로 할 때 1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부터 구전돼 오던 시조는 창제 후 근 300년이 지나서야 「청구영언」, 「병와가곡집」 등에 한글과 한자 혼용으로 실렸다. 

올해 6월 현재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기관인 ‘세종학당’ 수가 84개국 244곳이라 한다. 2007년 개설 당시 3개국 연간 740명이던 수강생이 2022년 8만1천476명(110배)으로 늘어 누적인원 58만여 명이라 한다. 세계 10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의 위상과 한류 열풍의 위력을 느끼게 한다. 

세종학당이 외국인에게 우리나라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는 만큼, 거기서 사용되는 교재 현황을 살펴봤다. 「세종한국어(1~8)」를 비롯해 회화, 비즈니스, 여행, 문화 등 분야별 초·중급 교재가 다양하게 나와 있었다. 그런데 시조 분야는 없었다. 2016년 KBS 방송에서 리투아니아 남녀 교육생들이 윤선도의 ‘오우가’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장면이 있었다. 한글 이해에 더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안한다. 가칭 ‘시조로 배우는 한글’ 과목을 신설해 교재로 제공하면 좋겠다. 한국 정신문화의 핵심 알갱이라 할 수 있는 전통 정형시인 시조로 한글을 배운다면 외국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보다 깊을 것이다. 외국인에게 시조는 한국의 자유시보다 인기가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전통시와 한글을 함께 습득하게 돼 이른바 ‘한국문화’(K-culture)의 본류를 알게 되는 셈이다. 일석이조 효과다. 가능하면 초급·중급 과정으로 단원을 나누되, 고시조와 현대시조를 적절히 배분해 한국문화를 익히는 심화과정으로 만들면 좋겠다. 앞의 ‘오우가’(자연)나 ‘탄로가’(인생사), ‘하여가’와 ‘단심가’(사회상) 같은 각 분야별·시대별 대표 작품을 선정토록 한다. 당장 단독 교재로 제작이 곤란하다면 기존 「세종한국어」 교재에 문화분야 별도 단원으로라도 개편, 보완하길 바란다. 

물론 이에는 국내적으로 선행돼야 할 일이 있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교과용 도서 편찬 주무당국인 교육부에 말한다. 중·고교 교과서에 있어 지금은 고시조 위주 전체 10여 편에 불과한 시조 분야를 1960∼70년대처럼 별도 단원으로 되살려주기를 앙망한다. 지난달 말 기호포럼에서 보다 자세히 주장한 바 있다.

보름 전 나는 ㈔훈민정음기념사업회 박재성 이사장을 처음 만났다. 한문교육학 박사이며 서예가인 그는 28자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만방에 알리는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그 일환으로 추진되는 「108인의 훈민정음 글모음」 책자 발간에 나도 ‘시조로 일깨우는 훈민정음’이란 글을 낸 바 있다. 지난해 발간한 졸저 「우리 시조와 어우러진 한글과 한자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연이 닿았다고 할 수 있다. 「세종어제훈민정음총록」 발간·배포와 28층 ‘훈민정음기념탑’(108m) 건립사업 같은 큰일을 하고 있었다. 또한 올해를 훈민정음 창제 578년으로 표기했는데, 이는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 12월 30일(창제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444년 1월 28일이어서였다. 철저함이 남달랐다. 

이제 세계 최고의 기록유산 ‘한글’이 세종대왕과 함께 점점 더 빛나리라. 한겨레 문화의 정수(精髓) ‘시조’로 읊는다.

- 맞두레질 같이 -

한글과 또 시조로
맞들이가 되어설랑
 
한류 중의 한국혼을
맞두레로 퍼 올리면
 
지구별
넘쳐흐르리
시조 한글 다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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