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승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원장
강석승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원장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내외 정황은 다른 어떤 때보다 매우 발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맹위(猛威)를 떨치던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사그라드는가 하면,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예견됐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또한 곡물과 원유를 포함한 주요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적폐(積弊) 청산을 둘러싼 잡음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가운데 금리·물가·환율 ‘3고(高) 현상’ 때문에 서민들의 주름살이 더욱 깊게 패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민족의 숙원이자 지상과제라 할 수 있는 평화통일에 관한 미래나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전망 역시 좀처럼 ‘현실과 미래를 연계한 청사진(靑寫眞)’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 국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통일·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주무부처는 1969년 3월 1일 설립된 ‘통일부’로, 사회 각계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통일 논의를 수렴하고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제도적으로 통일 문제를 다루는 중앙행정기관이다. 통일 및 남북대화, 교류·협력과 인도 지원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북한의 정세 분석, 통일교육 홍보, 그 밖의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그러나 이런 중차대한 업무를 다루고 있는 통일부의 최근 위상(位相)은 통일부에서 근 30년간 일해 왔던 필자의 입장에서 보기에도 재정립을 요구할 만큼 적지 않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어 이 란(欄)을 빌려 몇 가지 제언을 한다.

우선 통일부가 2022년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표방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 구현’이라는 목표 자체가 고장난명(孤掌難鳴)의 원리를 현실적으로 제대로 구현한 것인가가 문제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15경축사’에서 북한에 대해 이른바 ‘담대한 구상’을 발표했다.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 ‘대규모 식량 공급’ 등 6개의 경제협력을 할 것이라 언명했다.

그러나 이런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는 달리 비핵화 초기 협상 과정부터 경제 지원 조처를 적극적으로 담보하는, ‘업그레이드된 경제 지원 아이템’이라는 국가안보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북한당국이 체제 유지와 안전의 ‘최대 아킬레스 건’으로 삼는 핵 포기를 전제하는 것으로 "경제를 해결해 줄 테니 안보를 내려놓으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이 구상은 남북한 대화 과정에서 북한이 단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방적이며 비대칭적인 접근이기 때문에 그 당사자인 북한으로부터 냉대(冷待)를 자초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북한의 대남관계 총책이라 할 수 있는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은 담화(8월 19일)를 통해 체제 생존과 자주국방의 핵심 수단인 핵무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역설한 가운데 이 구상은 "핵무기를 경제협력과 바꿔 보겠다는 허망한 꿈으로 검푸른 태양을 말리워 뽕밭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 비난하면서 "우리는 윤○○, 그 인간 자체가 싫다"라고까지 힐난(詰難)했다.

또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담화(9월 18일)를 통해 "남과 북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빠른 시일 내 직접 만나서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사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는 당국 간 회담을 제의했다. 이는 5월 ‘코로나 방역 협력을 위한 남북 실무 접촉 제의’에 이은 2번째 제안이나, 북측은 대북전통문 수령마저도 거부한 채 지금까지 묵묵부답(默默不答) 행태로 일관하고 있다. 

과연 이런 제안이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물론 이산가족 입장에서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고향과 혈육과의 상봉이 가장 절실하고도 시급한 숙원(宿願)임에는 틀림없으나, 이를 ‘정치적 중대 사안’으로 인식하는 북한당국이 우리와 같은 입장과 자세를 가지고 수긍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이런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통일부 최고 책임자가 구태여 이 시점에 제안한 것은 "혹시나가 역시나다"라는 점을 충분하게 인지하면서도 남북관계 개선에 매우 적극적이고도 전향적임을 과시하기 위해 택한 대안(代案)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이어 작금의 인선(人選) 및 정책 추진 성향을 보면 과거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판박이’라고 할 정도로 맥(脈)을 같이한다. 정녕 우리나라에 인재(人材)가 그리도 없는 것인가? 아니면 선거 과정에서의 논공행상(論功行賞) 차원에서 이들을 중용할 수밖에 없었던 남모를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이 밖에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선 통일부 예산을 심층 분석해 불요불급하거나 유명무실(有名無實)한 사안(예를 들어 하나원 운영 및 남북회담사무국 축소,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남북경협사무소 폐지 등)을 대폭 정비하는 일, 특히 북한이 체제 보전의 독약(毒藥)이라 간주하는 ‘인권 문제, 탈북인 문제, 대북전단, 유튜브 등을 통한 백두혈통에 대한 시비 문제 등’을 사전에 여과(濾過)해 절제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 입장과 차원에서 "바쁠수록 천천히 가라"는 말처럼 조용하고도 차분하게 정책 조정을 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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