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공자학원은 정부의 중요한 정책이니 만치 다양한 목적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드러나는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대외적으로 표방하려는 명분을 세우기 위해서다. 즉, 세계 사람들에게 중국어를 교육하고, 중국의 유구한 역사와 뛰어난 문화 그리고 전통사상을 세계에 홍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받는 ‘공자’의 이름을 빌려 추진하는 것이다. 그래야 인류 사상가 반열에 중국인(?)을 올릴 수 있다. 마치 그리스 세계에서 그러한 역할을 한 ‘플라톤 아카데미아(Plato Akademia)’처럼. 인류문명사에 헬레니즘이라는 독특하고 질적으로 성숙한 문화를 창조한 역할을 한 정복군주인 알렉산더 대왕도 그러한 학교와 연관됐다.

둘째는 실질적 이익을 추구하고, 정부의 정치적 전략이 담긴 사업이다. 중국 공산당 체제의 우수함은 물론이고 실질적인 중국 국자와 공산당 정부의 이익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자연스럽게 벌이기에 편리하다. 중국 대사관이 공적이고 정치적 역할을 한다면 공자학원은 사적이고 민간인들이 참여해 민간인들을 상대로 한다. 예를 들면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친중 인사를 의도적으로 양성하는 일 또는 문화와 교육을 넘어 사회, 경제, 심지어는 정치 분야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공자학원이 외국에 있는 중국인들의 교육과 관리, 일부 통제 기능까지도 겸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공자학원이 가장 먼저 설치된 장소는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다. 그것도 동북공정으로 인해 한국 내부에서 한창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을 때였다. 고구려 전공자인 나는 당연히 이 일에 관여했고, 그때 동북공정은 단순한 고구려 등의 역사 왜곡을 넘어 신중화제국주의를 실천하는 방책의 하나라고 발표했다. 이어 「역사전쟁」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결국 이 용어는 세월이 지난 후에야 맞았음이 증명됐고, 많은 이들은 ‘역사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 중이고,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린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안이한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코웃음 치면서 여러 군데에 공자학원을 세운 것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는 정말 둔감한 사회인 듯싶다. 지금은 그런 일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한때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퉈 중국을 한국사회 깊은 곳까지 끌어들이는 데 열을 올렸다. 마치 유행처럼 또는 지방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처럼. 심지어 최근까지 정부의 일부 인사들이 보인 굴종적인 태도와 국가 이익의 양보는 언젠가 역사에서 비판 받을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 씨는 2017년 대통령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여러 곳에서 비자주적인 발언들을 했다. 베이징대 강연에서는 중국은 큰 산이고, 우리를 비롯한 나라들은 작은 봉우리로 비유했고, 우리가 중국 문화에 경도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한 발언을 했다. 또 중국몽은 우리 모두의 꿈이라고 치켜세웠다. 또 주중대사로 파견된 노영민 씨는 중국은 침략의 유전자가 없다는 발언을 했다.

지금 170여 개국 정도에 대략 2천 개 가까운 공자교육기관이 세워져 운영되고 있다. 물론 현재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심화되고, 미국이 공자학원의 실체를 폭로하며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후진국들도 중국의 실체를 파악한 곳에서는 공자학원을 배척하고 있거나 소외시키는 현상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나라는 크고 작고, 부국 빈국을 막론하고 존재 이유가 있고, 존재 의무가 있다. 또한 생태환경과 역사 과정, 문화배경 그리고 현재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른 나라와는 다른 자기의 존재 방식(identity)이 있다. 이러한 생물학적·역사적인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인간(Homo Sapience)’이다.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더불어 사는 지혜를 찾고 체득해 왔다. 공존하는 방식을 배웠고, 인류(mankind)는 또 지금도 항상 이 명제를 기억하면서 또 다른 지혜까지 배우는 중이다.

퇴근길마다 학교 정문과 도로의 한쪽에 세운 붉은색 기둥의 아치가 눈에 걸린다. 얼마 전 끝난 상하이협력기구(SCO)가 주최한 27개국 정상회의 때 세운 것이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중국의 힘이 재확인된 중앙아시아로서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왼쪽 기둥에는 ‘上海精神(상해정신)’이라는 큰 글자가 있고, 오른쪽에는 ‘互信(호신)’, ‘互利(호리)’, ‘平等(평등)’, ‘協商(협상)’ 등의 글자들과 함께 다양한 문명을 존중하자는 긴 글도 있다.

난 기대한다. 중국 문명이 서양 문명이 뿌려 놓은 고약한 냄새를 가셔 버리고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는 데 한 역할을 담당하기를 바란다. 인류 문명이 질적으로 성숙하고, 모든 인류가 더불어 웃으면서 사는 세상이 되는 데 일조하길 바란다. 난 믿고 싶다. 조금 전 목례를 올린 공자의 사상이 피비린내가 여기저기서 진동하고, 갈등과 탐욕으로 가득 찬 전쟁이 벌어지는 춘추시대의 종말을 진정으로 바란 것이었다고. 석양이다. 사막도시를 감싸는 발그레한 노을이 공자가 찬 큰 칼에 스며들어 무지개처럼 빛난다. 환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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