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30일 `근대 5대 명창'으로 꼽히는 정정렬(1876~1938년)을 내년 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하고 기념사업을 펼친다.

정정렬은 소리명창이 되는데 제일 중요한 요인인 `소리 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나 그 약점을 독특한 음악 해석으로 극복해 명창이 된 인물. 그는 일곱 살 무렵에 소리에 입문한 뒤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입산수도하는 방식의 독공(篤工)을 했다.

독공은 대개 100일이나 200일 동안 잠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한 일과를 모두 소리 연마에 쏟는 것으로 불가의 `용맹정진'같은 공부방법이다.

정정렬은 판소리의 해석을 새롭게 함으로써 `신식 판소리'를 부른 명창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는 판소리 사설을 노래하면서 장단을 정격대로 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본래의 장단보다 길게 늘이거나, 앞당겨 붙이는 등 `엇붙이는 방법'을 구사함으로써 음악적 재미를 극대화했다.

정정렬은 여러 판소리 중에서 `춘향가'를 새롭게 탄생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춘향가'를 새롭게 짜면서 소리 뿐만 아니라 극적 구성과 사설의 표현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예를 들면 춘향과 이도령의 관계가 춘향모의 허락을 받은 뒤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첫 날 밤을 지낸 뒤에야 춘향모에게 사실을 알린다든지, 사랑의 표현들이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된다든지, 이별 대목에서도 오리정에서 작별하는 장면을 더 넣어 슬픈 소리를 길게 부르도록 한 것 등이다.

그는 1930년대에 방송과 공연활동, 음반 취입으로 `스타 명창'이 됐다. 50대가 넘어 중앙무대로 진출해 작고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후배 판소리 명창과 청중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김여란 박녹주 김소희 등 당대 최고의 여류명창과 박동진 김연수 등 남자명창들이 줄지어 그의 문하에 들었다. 그는 JODK 방송에 가장 많이 출연한 판소리 명창이었고, 빅타와 폴리돌 등의 음반회사의 초청으로 음반사에 남을 대규모 전집 음반을 녹음하는 데도 참여했다.

그는 1936년 동양극장에서 창극 `춘향전'을 무대에 올려 성공을 거두는 등 당시 쇠퇴해가던 창극을 부흥시킨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문화인물 선정을 계기로 내년 2월 전북 익산 솜리문화예술회관에서 `국창 정정렬 추모비'가 건립되고, 제막식 공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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