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 태생으로 시문에 능했던 선생은 고종 22년인 1885년 생원진사시에 장원으로 급제했으나 시국의 혼란함을 개탄해 향리에 은거했다.
선생은 당시 전남 구례 월곡마을에 은거하며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聞), 동비기략(東庇紀略) 등을 저술하는 한편, 1899년 `언사소'를 조정에 올려 부정부패 해소 및 국정을 바로잡기 위한 방책을 제시했다.
선생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문변삼수'(聞變三首)라는 시로 을사5적의 매국행위를 규탄하는 한편, `오애시'(五哀詩)를 지어 민영환·조병세 등 을사조약에 반대해 자결, 순국한 애국지사를 애도하고 우국충정을 기렸다.
선생은 1910년 8월 일제의 한일합방조약으로 국권이 피탈되자 국치를 통분하며 같은 해 9월10일 절명시(絶命詩) 4편과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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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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