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29일.

나라안은 온통 공산 침략의 위기에서 구해준 터키와의 월드컵 3·4위 결정전을 앞두고 아침부터 들뜬 분위기로 응원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해를 지키는 해군들은 이날도 어김없이 동이 틀 무렵 우리 어선 보호를 위해 서둘러 서해 접적지역인 연평어장으로 향했다.

오전 9시37분.

우리 고속정 232편대 예하의 참수리(PKM) 357호의 레이더에 북한 육도 부근에서 점 하나가 시속 20노트로 남하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한 경비정임을 확인한 해군들은 북한 경비정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이어 서쪽으로 7마일 떨어진 등산곶 부근에서 또 하나 점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얼마만의 시간이 흘러 남하한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자 해군의 `2분 대기조'인 고속정 편대에 긴급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10시14분께 출동한 한국의 편대가 북한 경비정 388호에 1천야드 가까이 접근하자 NLL을 1.8마일 정도 침범했던 북한 경비정은 선수를 돌려 곧바로 북상했다.

또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남쪽으로 항해하던 북한 경비정에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고막이 찢어질 듯한 포성이 들렸다.

포탄이 우리 해군 함정조타실에 명중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조타실에 있던 대원들의 몸에 불이 붙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우리 해군들은 피격 직후 조건 반사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40㎜함포와 20㎜포, M-60 기관총, K-2 소총 사수들은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조타실과 기관실이 피격당해 전원이 끊기자 포 요원들은 수동 모드로 전환하여 사격을 했다.

심지어 손이 잘린 우리의 해군들은 잘린 팔뚝 위에 총을 얹어 놓고 그야말로 31분간의 장렬한 전투를 벌였다.

기습 공격을 받은 우리 장병들은 쓰러져 가는 동료들을 챙길 겨를도 없이 기관총과 소총을 잡고 정신없이 갈겨댔으나 결국 많은 사상자를 냈다.

해군 함정에는 갑판 아래 기관실은 물론 곳곳에 포탄을 맞아 구멍이 크게 뚫렸고 총알이 우박처럼 날아와 박혀 있었다.

격전이 벌어진 현장에서 불과 1∼2분 거리의 덕적도 상공에는 우리 공군의 KF-16 전투기 두 대가 초계 비행을 했고 곧바로 F-4 팬텀기도 합류했다.

그러나 이미 우리 해군은 전사 4명에 부상 22명, 실종 1명이라는 큰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11시59분 참수리 357호는 연평도 근해 바닷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오늘 오전 북한 경비정이 서해NLL을 침범, 이를 저지하려던 우리 해군에 총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아직 정확한 피해규모는…”

거친 파도만큼이나 격렬했던 전투는 나라를 지키려던 우리 장병들의 목숨을 앗아간 채 그렇게 전파를 타고 전국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