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뜨인돌이 최근 우리 말로 번역, 출간한 「인듀어런스」(원제 The Endurance)는 남극횡단에 나선 어니스트 섀클턴(1874-1922)과 대원들의 사투를 건 18개월간의 험난했던 여정을 생생히 그린 책이다.

15세기 무렵부터 시작된 대탐험시대가 종착역에 다다를 즈음인 1914년, 영국의 극지탐험가 섀클턴은 대원 27명과 함께 남극대륙 횡단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들은 남극대륙에는 발을 디뎌보지도 못한다. 그들이 타고 온 '인듀어런스'호가 항해 1천600㎞만에, 목적지를 불과 150㎞ 앞두고 남위 74도 남극 웨들해의 얼어붙은 바다 한가운데서 난파됐기 때문이다.

섀클턴은 남극대륙 횡단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자 과감히 목표를 수정한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 전 대원의 무사생환이었다. 결국 배를 버리고 남극해를 떠다니는 부빙에 몸을 옮겨실은 이들은 그때부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경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처참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온 대원이 똘똘 뭉쳐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발휘한다. 펭귄을 잡아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추위에 발이 썩어들어가면서도 전진, 또 전진한다.

이들이 항해를 떠나기 1년여 전, 스티븐슨이 이끌던 캐나다의 북극탐험대 '칼럭'호 승무원들이 조난 당한지 몇 달 만에 '이기적 집단'으로 돌변, 11명이 비참한 죽음을 맞은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섀클턴의 대원 가운데 희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칠레 정부의 군함에 구조된 것이 조난 634일째 되던 날이었음에도 말이다.

이들이 마지막 구조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일들은 인간의 생존 드라마 중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대원들을 망망대해의 한 무인도에 안착시킨 섀클턴이 다섯 대원을 이끌고 구조를 요청하러 떠나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길이 6m짜리 구명용 보트 한 척. 그것으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험난하다는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고, 해발 3천m에 달하는 전인미답의 얼음산을 넘어 그들의 첫 출항지였던, 무인도로부터 1천280㎞ 떨어진 사우스 조지아섬의 기지에 도착한다.

섀클턴은 훗날 고백한다. "길고도 험했던 여정의 마지막 단계인 얼음산을 넘을때, 우리 일행은 분명 3명인데 난 4명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 생각돼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그 힘들고 어려웠던 여행 내내 하느님이 우리와 동행하셨음을 난 믿는다"라고.

대원 중 한 사람은 구조되면서 "최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더라도 섀클턴이 리더라면 두렵지 않다"고 말했고,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역경에 빠져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섀클턴의 리더십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대원들에게 주문했을 만큼 섀클턴은 '20세기 최고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주요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면 그와 그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적게는 160여종,많게는 250여종이나 찾을 수 있다.

1998년 출간된 이 책은 대원들의 생생한 증언에 바탕한 글과 사진이 조화를 이루어 섀클턴의 탐험을 매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저자 캐럴라인 알렉산더는 전기작가 겸 큐레이터로 1999년 4월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인듀어런스:섀클턴의 전설적 탐험' 전시회를 주관하기도 했다.

100여 컷에 이르는 흑백사진은 섀클턴 탐험대에 대원으로 참여했던 사진작가 프랭크 헐러가 수동 카메라에 담아낸 것. 아름다운 남극의 모습은 물론 끔찍하게 파괴된 '인듀어런스'호나 사투를 벌이는 대원들의 모습이 여과없이 드러나 있다. 김세중옮김. 175쪽.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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