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영화는 1993년 ‘올란도’를 통해 페미니즘 감독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샐리 포터의 ‘탱고 레슨’이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탱고 수업을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감독이 직접 출연해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올란도’의 성공 이후, 차기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샐리가 실제 탱고 댄서인 파블로 베론을 만나 12번의 탱고 수업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런던의 작업실에서 새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던 샐리는 머리를 식힐 겸 파리로 여행을 가게 된다. 그리고 아름다운 탱고 선율을 따라 우연히 들어선 한 공연장에서 파블로 베론의 열정적인 탱고 공연을 보게 된다. 공연이 끝난 후 그녀는 파블로에게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 줄 것과 함께 탱고 춤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그녀의 요구에 파블로는 자신도 언제나 영화배우를 꿈꿔왔다며 요청을 수락하게 된다. 영화감독으로 그리고 탱고 무용수로 서로를 소개한 이들은 어느 정도 자신의 목적에 맞는 딜(deal)을 형성하며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탱고는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댄서의 동작으로 인해 여성이 리드하는 춤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남성이 얼마나 잘 이끌어주느냐에 따라서 여성 댄서의 복잡한 움직임을 살려낼 수 있는 춤이 바로 탱고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남성 댄서에게 더 많은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탱고의 이런 특성을 잘 몰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 속의 자아가 너무 강했을까? 파블로와 함께 댄스홀에서 공연을 하게 된 샐리는 춤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움직이게 된다. 결국 잔뜩 힘이 들어간 불편한 공연을 끝난 후 파블로는 샐리에게 ‘내 자유를 침범한 당신 때문에 전혀 춤을 출 수 없었다’고 소리친다. 하지만 이에 그녀는 ‘당신도 솔로이스트이길 바랬던 거뿐이지 파트너를 배려하며 함께 춤을 추려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갈등을 겪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삐걱거리는 관계도 상대에 대한 이해와 믿음으로 점차 변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샐리와 파블로는 서로에게 존재의 의미가 돼 주는 사이로 발전한다.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라지는 거 같다’고 말하는 불안한 파블로에게 샐리는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났다’고 말이다.

정직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과정은 아름다운 탱고를 추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가족, 연인, 직장 동료, 친구, 이웃이라는 관계 등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두 사람 모두 강해서도, 혹은 모두 약해서도 성립되지 않는다. 마치 탱고를 출 때 남녀가 모두 튀려고 애쓰거나, 혹은 둘 다 자신이 없는 동작을 하면 제대로 된 춤을 출 수 없듯 말이다. 탱고 공연에서 여성이 화려한 춤을 출 수 있는 건 그녀가 남성 댄서를 철저히 믿고 따라주었기 때문이며, 남성이 여성 댄서의 안정적인 동작을 이끌어 내며 리드할 수 있는 것 또한 그녀가 그를 최대한 배려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을 믿고 배려할 때 탱고 공연도 그리고 우리들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도 균형 속에서 조화롭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처럼 아름다운 하모니를 위해 스스로에게 나지막이 속삭여 본다. 내 마음 속 공간을 한 뼘쯤 더 늘려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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