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여름이 오고 있다. 에어컨 바람이 어색하지 않은. 그렇게 계절이 분명하게 바뀌는 즈음 옷장 정리를 했다. 이제는 더워서 입을 수 없는 긴팔 옷들은 장롱에 넣어두고, 대신 지난 여름 입었던 옷들로 옷걸이를 채웠다. 그러던 중,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장롱에서 옷을 꺼낼 때 맡게 되는 오래된 섬유제 냄새, 혹은 묵은 시간의 냄새. 그렇게 옷장 정리를 하다가 책꽂이 한쪽에 먼지와 함께 꽂혀 있는 DVD 한 장을 꺼내들었다. 옛 시간을 더듬듯, 지나버린 봄날을 아쉬워하며 영화 ‘봄날은 간다’를 다시 봤다.

영화는 30대의 어찌 보면 그저 그런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만났다 헤어지면서도 혹시 언젠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자신의 ‘솔 메이트’를 끊임없이 찾을 수밖에 없는, 쳇바퀴를 도는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30대의 건조한 사랑이야기, 봄날은 간다.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이 변하냐고 묻는 은수에게 상우는 변해 버린 사랑의 존재가 아닌,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순수하기에 은수에게는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미 자신은 사랑, 행복한 결혼, 사람의 따뜻함 등을 믿지 않는데. 사랑보다는 이별, 함께 하는 행복함보다는 혼자만의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아직 그걸 보지 못한, 겪지 못한, 혹은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랑을 믿는 상우가 은수에게는 ‘부담’이 됐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나이가 많다는 것.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내’가 ‘너’보다처럼 그렇게 나이가 많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에 비해 경험은 앞선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이가 어린 이들에겐 그들이 원하지 않아도 ‘순수’한 면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같은 이유로 나이가 들게 되면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해도 그 순수는 ‘퇴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 산 흰 셔츠를 입고서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때 낀 목 부분과 소매 부분을 신경을 써서 빨고, 햇볕에 바싹 말려 곱게 다려 다시 새 옷처럼 입어도, 그 옷은 이미 새 옷이 아닌 새 옷‘처럼’ 뿐이 안 되는 것처럼. 한 번 바라진 순수는 다시 돌리려 해도 처음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될 수는 없다.
비록 상우의 순수가 순도 100%라 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의 마음은 그녀보다는 흰 빛을 띠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의 하얀 셔츠를 늘 하얗게 하려 했지만, 그녀는 회색이면 회색인 채로, 노란 물이 들였으면 그 물든 그대로 이미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그럼에도, 원래 그녀의 셔츠도 처음부터 그런 색을 가지지 않았다고 자꾸만 상기시키는 상우는 어찌 보면 그녀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우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색을 가진 그녀가 무심코 곁에 있는 상우에게 다른 색을 묻혔을 때, 그녀에게는 별 대수롭지 않는 그 색이 늘 백색이려 노력한 상우에겐 도드라져 보여 지우고 싶은 흔적이 된다는 것도 은수에게는 반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를 보며 ‘상처’를 확인 받는 그녀가 다시 그에게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이 그녀에겐 정말로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순수한 상우도 변해버린 은수도, 상우에게 은수만이 아니고, 은수에게 상우만이 아닌, 둘 다 모두에게 아픔인 것 같다. 가버린 그 봄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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