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개봉해 300만 명이라는 독립영화 역사상 가장 경이적인 관객 스코어를 기록한 워낭소리 덕분일까? 예전보다는 독립영화에 관객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12만 명 이상을 기록한 똥파리, 그리고 3만 명을 넘어선 낮술이 바로 그런 영화들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들 영화에 대한 관심은 영화 그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관객 스코어가 몇 명이 들었느냐는 상업적인 기준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에 있다. 노영석 감독 스스로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미술 그리고 조연으로 연기까지 7개의 역할을 소화해 낸 ‘낮술’이라는 궁금한 이름을 가진 이 영화는 과연 어떤 이야기로 관객들을 안내하는지 그 알딸딸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자친구와 헤어진 혁진을 위로하기 위해 모인 친구들과의 술자리. 이들은 아픈 혁진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김에(?) 강원도 여행 계획을 세우게 되고,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혁진을 설득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강원도 정선 버스터미널에 먼저 도착한 혁진.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보지만 전날 마신 술이 깨지 않아 며칠 뒤에 내려갈 거란 말을 남기고 결국 낯선 곳 강원도에서 그의 파란만장한 여행이 시작된다. 일상과는 반대말처럼 느껴지는 여행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자유. 그렇게 일상 탈출의 기분에 젖어서였을까?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면서 혁진은 여행이 주는 묘한 낯선 느낌에서 오는 두려움과 떨림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꽃뱀 사기단의 꾐에 빠져 술에서 깨어보니 고속국도 한쪽에 바지가 벗겨진 채 버려져 있는가 하면, 우연히 버스 안에서 만난 자신의 여성 취향과는 거리가 먼, 차마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여자의 끊임없는 수다에 ‘피곤해서 좀 잘게요’라고 한마디했다가 온갖 욕을 다 얻어먹는가 하면. 히치하이킹을 하다 만난 고마운(?) 트럭 운전기사와의 하룻밤에서는 절대 원하지 않았으며, 전혀 즐겁지도 않은 그 두툼하고도 뜨끈한 남자의 손길을 은근슬쩍 뿌리칠 수밖에 없는 악몽과도 같은 밤이 지나, 구세주 같은 친구를 만나 드디어 낯선 곳에서 겪는 두려움에서 해방되는가 싶었지만, 아뿔싸! 예쁜 여자가 있다는 친구의 말에 하루 더 머물기로 한 강원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아는 형님의 펜션에서 가위 눌리는 포스의 무서운 욕쟁이 여자와의 재회까지. 여행 내내 혁진은 아픈 속을 달래가며 끊임없이 마셔댄 술이 없었다면 맨 정신으로는 견디기 힘든 기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경험을 하게 된다.

자본과 배급망에서 독립함으로써 시장의 논리보다는 감독의 창의적인 의도에 따라 제작된다는 의미를 가진 독립영화. 감독의 작가적 성찰이나 실험적인 영상들을 통해 기존의 상업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립영화가 가진 장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독립영화의 모험적 특성은 때때로 관객들과의 소통의 접점을 찾지 못해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 있어서 노영석 감독의 ‘낮술’은 비록 독립영화 특유의 심오한 주제의식이나 모험적인 카메라 워킹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재기발랄한 이야기 전개로 여행과 술이 주는 알딸딸하면서도 신선한 독립영화의 바람을 느끼기에 모자라지 않는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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