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고작 10명으로 출발한 무영건축은 25년 만에 800명의 건축 전문가가 포진한, 매출액 1천억 원을 기대하는, 해외 현지법인과 계열사를 7개나 둔 국내 빅3 종합건축설계사무소로 성장했다.
짧다면 짧은 기간, 세계 굴지의 건축설계사무소를 제치고 건축설계 분야에서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무영건축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무영건축의 설립자이자 CEO인 안길원(68)회장은 40년간 ‘건축’이란 외길만 묵묵히 걷고 있다.
그는 “건축 본래의 존재 목적은 인간의 생활을 쾌적하게 하는 것인 만큼, 건축은 시작도 인간의 삶이며 나아가야 할 방향도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안 회장의 건축철학은 그대로 무영건축에 녹아 있다. 무영건축은 삶의 질과 관련된 기능성과 경제성을 바탕에 깔고 도시의 지역성과 장소성을 고려해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해 내는 데 설계의 목표를 두고 있다.
특히 안 회장은 회사 설립 초기부터 국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무영건축이 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각종 국제현상설계공모전에서 세계 굴지의 설계업체를 제치고 최종 업체로 선정되면서부터다.
이 회사는 2008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50억 달러 규모의 판교신도시급 2개와 맞먹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따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8년 ‘글로벌 디자인 리더 무영’이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건 무영건축은 앞으로 해외 매출 비중을 5년 내에 30%까지 확대해 나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간과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추구하는 안 회장의 건축철학이 국제화한 감각과 어우러지며 ‘건축설계의 한류 기수’로 무영건축이 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전문성과 탁월한 사업감각까지 갖춘 안 회장은 냉정한 비즈니스맨으로 통하면서도, 마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도 통한다.
그는 1942년 황해도 장연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전쟁을 피해 바다를 건너 백령도에 정착한 그는 제2의 고향인 인천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안 회장의 ‘인천사랑’은 각별해서 2009년 말에는 인천노래 4곡을 만들어 인천시민들에게 선물하기에 이른다. 야구 명문 인천고를 졸업한 그에게 인천을 대표할 응원가가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 ‘연안부두는 인천뿐 아니라 목포·군산에도 있기 때문에 진짜 인천노래를 만들고 싶어’ 음반까지 낸 것이다.
그의 인천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 1999년부터 지금까지 모교인 인하대에 벤처창업·장학기금·학교발전기금 등으로 6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 인천고에도 2004년부터 장학금과 야구후원회비 등으로 연간 2억 원 가까이 내놓고 있다. 인천대에도 함께 발전하자는 뜻에서 2007년 2월 5천만 원을 전달했다. 어릴적 고향인 백령도에도 책을 보내고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은퇴 후에 30억 원 규모의 장학기금을 만들어 무영가족의 학자금을 지원할 계획도 마련해 뒀다.
안 회장이 펼치는 ‘전문성’·‘국제화’·‘인간애’ 3박자 경영이 창립 25주년을 맞은 무영건축의 미래 비전에 또 어떤 모습으로 투영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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