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다 돼 가는 연배에도 항상 젊은이다운 패기를 지닌 사람같다.”, “일 년에 지구 몇 바퀴를 돌아도 유일하게 견뎌 낼 위인이다.”, “인천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다보니 회사에서보다 인천에서 얼굴 보기가 더 손쉽다.”
위의 수식은 모두 인천과 인연이 깊은 한 인사에게 쏟아지는 평판이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세상 이치를 모두 꿰뚫어 볼 것 같은 위풍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어려운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을 것 같은 푸근함이 묻어난다.

바로 안길원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을 두고 일컫는 지인들의 호평이다.

개인 사업보다 적십자사의 일에 더 공을 들이느라 가끔 “회사 직원들의 눈치가 보인다”는 안 회장을 만나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이하 한적 인천지사)의 새해 설계를 들어봤다.

대담은 지난 4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 “안길원 회장은 일복이 많은 사람이다.”
안 회장이 취임한 날은 지난해 8월 하순이다.

당시 인천 지역은 태풍 ‘곤파스’의 영향 탓에 도로와 주택 곳곳이 물에 잠겼고, 문학월드컵경기장의 지붕천막이 찢겨 날아갈 정도로 피해가 컸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했습니다. 취임과 동시에 큰일이 터졌습니다. 밤낮을 바꿔 가며 한적 인천지사 식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땀방울을 쏟았습니다.”
곤파스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또 한 번 인천에 큰 물난리가 터졌다.

민족 대명절 추석을 하루 앞두고 1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서구·부평구·계양구 일대를 덮친 것이다.

“설상가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곤파스 때는 몰랐지만 집중호우까지 터지니 ‘정말 내가 일복이 많긴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안 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힘든 상황에서도 묵묵히 봉사를 펼치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감회를 털어놨다.

“자원봉사라는 것이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당시 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한적 인천지사 회장직을 맡기 이전에는 자원봉사에 대한 고민이 깊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충격은 지금도 저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습니다.”
안 회장이 말하는 ‘충격’이란 장대비가 퍼붓는 상황에서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담장 외벽에 새로운 옹벽을 쌓는 일을 했던 어느 자원봉사자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다.

“위기일발의 순간에도 제 몸 아끼지 않고 일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봉사라는 것, ‘참으로 고귀한 것이구나’하는 마음이 절로 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봉사에 대한 진정성을 깨달아 갈 무렵, 안 회장은 그의 가슴을 더 세차게 두드린 일을 경험하게 된다.

지난해 11월 23일, 한반도 전체를 경악케 했던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전 직원이 비상근무에 돌입했고, 전국 각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인천으로 모였습니다. 또 한 번 놀랐고 감동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자원봉사자들의 응집력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연평도 사태가 터졌을 때 한적 인천지사는 그야말로 구세주 역할을 했다.

피난길에 오른 연평도 원주민을 제외하고 자원봉사와 피해 복구를 위해 연평도를 찾은 자원봉사자, 취재진, 기반시설 복구요원을 위해 한적 인천지사가 운영하는 ‘사랑의 밥차’가 직접 식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두 번에 걸쳐 밥차가 들어갔는데 8명씩 2교대로 일주일 정도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나중에 북한군의 포 사격으로 대부분 잔류인원이 연평도를 빠져나갈 때 밥차 운영도 중단됐죠. 당시 밥차가 사라져 아쉬워했던 분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루라도 빨리 다시 남북 대치의 긴장이 풀리길 바랐습니다.”
한적 인천지사의 수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뭍으로 피난을 떠난 연평도 주민들이 묵고 있는 찜질방에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잇따랐다.

당시 한적 인천지사는 담요와 구호품 등 8천만 원의 물품을 지원했다.

이 같은 노력과 땀방울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인천시 옹진군은 지난해의 마지막 날을 장식하는 종무식에 한적 인천지사에 감사패를 전해 감사의 뜻을 대신하기도 했다.

# “적십자는 처음으로 내 가슴을 깨운 곳이다.”
안 회장은 미처 몰랐던 적십자사의 속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졌다고 한다.

건축기술자로 평생을 살아오며 세계를 무대로 그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중견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인천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탓에 그를 따라붙는 수많은 직함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라는 10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상징적인 봉사단체의 장을 맡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주변 분들의 권유가 너무 커서 끌려가듯 적십자사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그런데 태풍과 집중호우, 연평도 사태를 겪고 나니 저도 모르게 심장에서 큰 울림이 전해졌습니다. 이렇게 가슴이 뛰는 일은 40년 전 아내를 처음 만나 사랑을 꽃피웠던 이후로 처음인 듯합니다.”

# 안길원 회장이 꿈꾸는 한적 인천지사의 미래
안 회장은 한적 인천지사를 이끌어 갈 신년 포부를 묻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그의 비전을 쏟아냈다.

“우선 국제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는 인천의 위상에 맞게 새로운 방향의 봉사활동에 대한 상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게 아니라 미리 봉사활동을 펼칠 곳을 들여다보는 능동적인 마인드를 불어넣을 방침입니다. 또한 봉사나 적십자사 활동 범위를 넓히기 위해 보다 공격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구상 중입니다. 현재의 방법으로는 더 폭넓은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안 회장은 ▶청소년적십자(RCY) 활동의 조직력 확충 ▶5천 명 자원봉사자 육성 ▶한적 인천지사 청사부지 현대화 ▶기업과의 나눔협약 사업 확대 등의 계획도 공개했다.

# “나눔의 문화는 미래를 보장하는 아름다운 투자입니다.”
안 회장은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들이 오해하고 있는 ‘적십자회비의 북한 지원 논란’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제 주변에도 여전히 국민들이 내는 적십자회비가 북한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절대 적십자회비는 북한 지원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다만, 적십자사는 105년의 역사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으로 마련한 예산으로 대북 비료 지원이나 구호물자를 보낼 때 이름만 빌려줄 뿐입니다. 더 이상 이런 오해는 하지 않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적 인천지사는 올해부터 홀몸노인·소년소녀가장·다문화가족 등 사회의 소외받는 이들을 위해 특별한 행사를 열기로 했다.

한 해의 마무리를 하는 연말께 이들을 초청, ‘사랑의 음악회’를 여는 것이다.

안 회장은 “사랑의 실천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가슴이 시키는 일을 누가 먼저 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누군가에겐 어려운 발걸음일 수 있는 봉사를 더 가볍게 하기 위해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 주는 일에 우선적으로 힘을 싣겠다”고 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