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에 집중됐던 여름휴가는 최근 6월 말과 9월 초순께로 다변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바야흐로 여름이다. 오늘은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을 통해 색다른 의미의 여름휴가를 선사하려 한다. 1959년 개봉해 ‘산드라 디’라는 불멸의 청춘배우를 탄생시킨 추억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대서양의 아름다운 휴양지 ‘파인 섬’으로 여름휴가를 떠난 켄 조겐슨. 그에게 이 섬은 젊은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장소다. 어느덧 중년에 접어든 켄은 아내와 딸과 함께 파인 섬을 찾는다. 그리고 그는 청춘의 열병과 재회하게 된다. 여전히 아름다운 실비아. 그녀는 그의 가슴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사랑이었다. 가진 거라곤 젊음과 열정뿐이던 이십대. 그는 실비아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을 허망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켄은 섬을 떠나 도시에서 생활하며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사랑스러운 딸 몰리를 얻게 되지만,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이름은 실비아뿐이었다.
이미 가정이 있는 실비아와 켄의 사랑이 비밀스러운 속삭임이라면, 청춘 남녀의 사랑은 풋풋함으로 가득하다. 아버지를 따라 섬에 온 몰리는 그곳에서 조니를 만나 첫눈에 사랑을 느낀다. 서툴지만 순수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조니와 몰리. 그러나 이들의 사랑도 순탄치 않았다. 엄격하고 보수적인 몰리의 어머니는 10대인 딸의 연애가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장애는 조니가 실비아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20여 년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깊이 묻은 채 살아가던 켄과 실비아는 더 이상 세상의 이목이 아닌 자신들의 감정에 충실하기로 결단을 내린다. 다시 말하면 조니와 몰리는 부모님의 이혼과 동시에 재혼을 통해 한 가족으로 거듭나게 되는 비극 아닌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니와 몰리는 부모세대와는 달리 비극에 굴복하지 않는다. 환경과 조건을 탓하며 자신들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세상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그 사랑을 접지도 않았다. 그렇게 피서지에서 생겨난 로맨스는 책임감 있는 결실을 맺으며 사랑과 추억을 방울방울 꽃피운다.
작품만큼이나 유명한 이 영화의 메인 테마곡을 듣고 있으면 아련한 사랑의 추억 하나가 자연스레 피어오를 만큼 부드럽고 서정적이지만, 이 작품의 내용은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달콤함만을 노래하진 않는다. 사랑 뒤에 남겨진 책임감에도 무게가 실려 있다. 서로를 마음속에서 지워 내지도 못한 채 흘려보냈던 무의미한 세월과 이들의 뒤늦은 재회로 상처받게 되는 다른 가족들의 아픔은 생각해 볼 문제로 남는다. 반면 허락될 수 없는 사랑을 향해 달려 가는 자녀들의 모습 또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럼에도 결국 그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억지로 막은 사랑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부모세대를 통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 앞에 놓인 무수한 선택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며, 그 결정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의 몫이다. 한여름, 피서지에서 싹튼 사랑의 감정을 청춘의 무모함이나 하룻밤의 꿈이 아닌 인생의 선택으로 이야기한 탁월함. 그것이 이 작품을 로맨스영화의 전설로 만든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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