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런던 올림픽이 끝났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염원하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했던 17일간의 경기. 우리가 선수들을 응원한 것이 아니라 선수들이 삶에 지친 우리들을 응원하고 있었다는 한 광고 문구처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며 희망과 감동을 함께했다. 이처럼 여러 사람들과의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세상은 향기롭게 피어난다. 어려운 일이 닥쳐와 좌절하고 절망할 때 지친 어깨를 감싸주는 따뜻한 손길에 우리는 힘을 얻고 다시 희망을 꿈꾼다. 오늘 소개할 영화 ‘주노’는 16세 소녀의 암담한 현실이 주변의 배려와 관심으로 무지갯빛 희망으로 물들어 가는 1년을 그려낸 작품이다.
16세 소녀 주노, 첫사랑을 만나야 할 나이에 아기가 먼저 찾아왔다. 시쳇말로 멘붕이 아닐 수 없다. 임신테스트를 세 번이나 해 봤지만 모두 양성반응. 굳이 누가 아빠냐고 묻는다면 같은 반 친구인 ‘블리커’다. 블리커는 평범하다는 단어조차 과하게 느껴질 만큼 눈에 띄지 않는 아이다. 그렇다고 주노가 블리커를 사랑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주노는 고심한다. 아주 잠깐. 그리고 결정한다. 아이를 지우기로 말이다. 그러나 “뱃속 아기에겐 벌써 손톱도 있어”라는 신빙성 없는 한 친구의 말에 주노는 차마 아이를 지우지 못한다.
주노는 생각한다. 9달만 고생하면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으니 출산하기로 말이다. 이후 아기는 불임부부에게 입양을 보내기로 주노는 자신의 생각을 일사천리로 정리한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란 공포 그 자체였다. 혼날까봐, 맞을까봐 불안했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부모님은 질책보다는 위로와 격려를 해 줬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한 것이 잘한 일은 아니지만, 낙태가 아닌 출산을 결정한 딸의 용기와 결정에 어깨를 토닥여 줬다. 신문을 보고 찾아낸 입양부모들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중산층 이상의 부유함과 멋진 외모, 괜찮은 직업, 무엇보다 어느 정도 자신의 취향과 통하는 예술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일을 시원시원하게 결정하는 주노 덕분에 입양에 관한 법적 절차도 끝나고 이제 남은 일은 기다림뿐. 주노의 뱃속에서 무럭무럭 아이가 잘 자라길 바라는 일, 그것뿐이었다. 주노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등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조금씩 배가 불러오고, 정기검진도 받으며 주노는 자신에게 찾아온 생명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우쳐 간다.

16세 소녀의 임신과 출산. 그야말로 기가 막힌 상황이다. 뒤늦은 후회와 반성으로 흘리는 뜨거운 눈물 혹은 사회적 편견과 차가운 현실에 내버려진 소녀의 비극적인 운명 등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10대 미혼모의 모습은 이 영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영화 ‘주노’는 임신에서 출산까지 9개월간의 시간을 통해 청춘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해 내며,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가운데에서도 사랑과 모성의 본질을 진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임신이라는 현재 상황을 감추기에 급급해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후회를 남기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게 하는 특별한 이야기. 영화 ‘주노’는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감동을 준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