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국내 영화의 위상을 높인 작품으로, 지난 9월 가장 뜨겁게 주목받았던 한국 영화였다. 극장을 찾아 이 영화를 봤을 때, 관객들로 가득 찬 극장 안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작품이 이토록 대중적이었던가? 반문을 하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영 후, 채 10분도 되지 않아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관객들을 봤을 때,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는 몇몇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불편한 영화-김기덕 감독의 작품임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불편한 영화’. 그것은 김 감독의 작품들을 묘사하는 공통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그의 작품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한 남자의 머리 위로 쇠사슬이 내려온다. 마치 사형을 집행당하듯 그 남자는 강요된 자살을 이행한다.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 사내는 죽을 수밖에 없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영화는 시작된다. 도심의 높은 빌딩숲, 그 속에 불협화음처럼 버려진 청계천 공단. 이곳이야말로 그 어떤 공간보다 더욱 간절히 구원을 필요로 하는 곳이지만 버려진 공단엔 폭력의 순환으로 불구자만이 끊임없이 생산될 뿐이다. 그 폭력의 근원은 바로 ‘돈’이었다. 어쨌든 살아야하기에 고리라도 돈을 빌려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빌려준 돈을 받으며 생계를 꾸려가는 주인공 강도. 원금 300만 원이 몇 달 새 이자만 3천만 원이 넘는 상황. 이에 빌고 사정하는 연체자들에게 강도가 내세우는 논리는 간단명료했다. “남의 돈을 빌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돈을 갚을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맞이하는 최후는 신체 훼손이었다. 연체자들의 손가락, 팔, 다리 등 갚지 못한 돈에 맞게 불구가 된 이들의 보험금을 강도는 대신 수급하며 밀린 이자와 원금을 상환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끔찍한 사내 앞에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그의 엄마라 주장한다. 느닷없는 여자의 출현에 강도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등장에 그녀에게 고통을 주며 엄마임을 증명해 보라 하고, 모든 고통을 참아내는 여자의 모습에 강도는 그녀가 자신의 엄마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이 세상 어디에도 피붙이 하나 없이 살아온 외로운 날들이 엄마의 등장으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기원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어떠한 미련도 없었기에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타인에게 가하는 자신의 폭력에 죄책감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의 시작인 엄마를 만나고, 그로 인해 살아있음을 체감하게 되면서 강도는 비로소 세상살이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에게도 지키고 싶은 것, 간직하고 싶은 소유욕이 생기게 된 것이다. 엄마와의 재회도 잠시, 실종된 엄마를 찾기 위해 강도는 자신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들을 찾아가 복수하려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강도는 자신이 파괴한 채무자들의 삶을 직시하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복수가 아닌 용서를 빌며 엄마를 돌려 달라고 애원한다. 용서받을 수 없을 것 같은 그의 속죄, 그 끝에 과연 구원은 존재할까?
‘피에타’는 이탈리아 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의미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은 구원과 자비의 맥락에서 피에타를 제목으로 삼고 있지만, 이 작품은 우리에게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보여 주는 정제된 감정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감독은 관객이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들, 혹은 거부하고 싶은 것들을 억지로 집어넣는다. 세상의 폭력과 무자비함을 그는 우리에게 불편한 영화 보기를 통해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영화 ‘피에타’는 십자가와 가시면류관을 우리에게 써보라고 권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통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편함. 그러나 그 불편함은 이전 그 어떤 영화에서도 느껴볼 수 없었던 세상을 현시하게 만들어 준다. “신이여,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스스로를 구원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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