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식 인천시서구발전협의회 회장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고 자라면서 명예욕이 생기면서 유명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한을 자식들이라도 이뤄주길 바라면서 모든 정성을 자식들에게 쏟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자식들은 부모의 강요에 끌려 적성을 무시한 채 각종 과외로 어깨가 축 늘어지도록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부모들의 과욕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이기는 법을 어머니 뱃속에서 터득하고 나오므로 가정이나 학교에서 구태여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에게 지는 방법은 부모나 교사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업이든 운동이든, 또는 아이들끼리의 작은 싸움에서도 결코 져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이것이 대부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마음이다.

 물론 자기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싸움도 이겨주길 바라는 데 그치지 않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기는 것보다 지는 일이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또 어른들의 세계이든 아이들의 세계이든 일등은 한 명뿐이고 그 한 명의 일등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패배와 좌절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각종 선거 때가 되면 그 많은 후보자 모두가 이겨보겠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이등이 필요 없는 선거지만 일등을 하기 위해 서로 상대를 헐뜯고 싸움질하다 지고 나서는 허탈감 속에 좌절하고 만다. 만약 이들이 어려서부터 지는 것을 배웠다면 좌절하지 않고 떳떳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깨달았을 것이다.

 지는 데 익숙한 사람, 남보다 뒤떨어져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사람, 지면서도 남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 말로 진정으로 남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며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지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의 몫을 존중해주고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개성이나 능력, 그리고 감정을 긍정적으로 자각할 때 타인의 몫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주장은 단순한 말의 성찬이 아니다. 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사회에 나간, 귀엽게 자란 아이들 대부분은 지는 자신을 어쩌지 못한 채 좌절하고 실망하기 쉽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사는 아이들은 패배로 인해 쉽게 좌절에 빠지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낙오자가 되기 십상이다.

인생은 무상한 것이다. 무엇이 올바른 인생관인지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여건과 교육풍토이고 보면 자식들이 서야 할 곳은 뻔하다. 부모들이 자신의 집념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도덕교육이나 대인관계·양보예절에 대한 인성교육보다는 일등만이 일생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한 그렇다고 본다.

이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다른 사람과 타협할 줄 알고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자존심 때문에 우울증이나 신경증에 시달리지 않도록 지는 방법도 가르쳐줄 때가 되었다.

성적을 비관하며 남을 이기지 못한 자존심 때문에 우울증이나 신경증에 시달려 자살하는 학생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이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는 법도 가르쳐주자.

그래서 우리 후대에는 지금처럼 이기기 위해 싸움질하는 사회가 되지 않고 훌륭하게 자란 사람만이 모여 여유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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