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최근 일본 아베 총리의 무책임한 발언과 행보가 이웃나라들에게 깊은 우려감을 갖게 하고 있다. 마치 100년 전 제국주의의 전횡으로 빚어졌던 동북아지역 갈등의 요인들이 잠재된 불씨로 남았다가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동북아 한중일 3국의 역사적 부침(浮沈)은 고대 이래 현재까지 오랜 세월 이어져 왔다. 일본과의 역사적 갈등은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과 같은 고대 한일관계에서부터 독도와 종군위안부, 신사참배문제, 동해 명칭문제 등 근대 일제침탈의 잔재에 이르기까지 교과서문제나 정치적 입장에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다.

 심지어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한 일본 총리의 비상식적 역사인식은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인물의 환생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이러한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은 군국주의의 소산인 가미카제(神風)특공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또 조선인 징용자의 한(恨)이 서린 기타큐슈시의 야하타(八幡)제철소 등 메이지(明治)시대 일본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일본 패전 후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군 포로·인양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려는 데까지 맹목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것은 물론, 이웃 국가의 아픔과 수난을 담보로 했던 자료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는 시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저버리는 것이고 세계문화유산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

얼마 전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필리핀의 섬에 정보원으로 파병돼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약 29년 동안 정글에서 고립생활을 했던 옛 일본군 육군소위 오노다히로(小野田寬郞)가 91세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는 종전 후에도 정글에 숨어 지내다 현지 경찰과의 총격전으로 생존 사실이 확인됐고, 1974년 전 상관의 설득으로 고국 땅을 밟았던 인물이다.

비슷한 사례로 종전 후 27년간 괌에서 은신생활을 한 요코이쇼이치(橫井庄一) 하사를 비롯해 1955년 이후 귀국했던 옛 일본 군인들은 24명이나 된다. 이들이 생환했던 당시 일본의 극우파들이‘살아있는 일본 정신을 보았다’고 열광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최근 일련의 우경화 움직임에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을 통해 ‘일본 정신’이라는 미명하에 위축된 일본 경제를 군국주의의 부활로 대체시켜 주변 국가에 또 다른 정치적 갈등을 조장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중국 역시 우리나라와는 이이제의(以夷制夷)라는 전통적 방법론으로, 우리 측에서는 실리외교(實利外交)라는 입장에서 사대(事大)와 교린(交隣)정책이 오랫동안 교차되었던 역사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중국은 2002년부터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동북공정(東北工程)' 이라는 프로젝트로 자의적 해석의 영토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고구려와 발해는 물론, 궁극적으로 한강이북지역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역사인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여기에 일본과는 조어도(釣魚島)문제, 우리나라와는 이어도 문제를 이미 제기한 상태이다.

이렇게 대외적으로 역사문제가 첨예한 시점에 정작 우리 사회는 어떤 객관적 역사인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근래 우리 사회에 제기된 고등학교 검인정 역사교과서 문제나 숭례문 복원에서 드러난 부실과 책임문제, 각 지자체마다 문화유산의 보존과 복원 등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민원과 갈등 등도 그 본질은 역사의식이 수반되어야만 하는 광의의 역사문제들이다. 

과연 우리에게 역사는 무엇인가? 세계적인 석학 카(Edward Hallet Carr, 1892∼1982)는‘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통해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제를 남겼지만, 역사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교훈’이다.

역사는 우리의 정신과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하나의 방법이지, 정치적 이념과 갈등을 조장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리 그럴싸한 이론이라도 우리의 삶을 구속하고 서로 반목하는 논리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뜻에서, 우리 주변의 주요한 관심사가 온통 정치 아니면 역사문제로만 집중되는 듯한 지금이야말로 역사가 주는 메시지를 통찰할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는 균형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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