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객원논설위원

 갈치조림이 유명한 식당 안은 저녁을 먹으러 온 손님들로 붐볐다. 요행히 자리를 얻은 일행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모두 자동적으로 맞은편 벽 쪽에 걸린 TV에 눈을 줬다. 눈과 귀가 정말이지 볼 수도, 안 볼 수도 없는 뉴스에 끌려들고 만 것이다.

앞서 와서 앉은 옆의 다른 테이블에서 “에이, 이게 이게…”하는 탄식이 나오고,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선장을 어찌어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뒤쪽에서 “정말 미치겠어요. 우리가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아요?”하는 한 여자 손님의 목소리도 들렸다.

상이 차려져 냄비에서 갈치조림 한 도막을 앞에 놓인 접시에 옮겨 놓았다. TV는 방금 인명(人命)에 관한 숫자를 정정하고 있었다.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게 차라리 나을 듯싶은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그때 “선배님, 여기, 여기에다 하세요”라며 마주 앉은 후배가 작은 접시를 이쪽으로 내밀었다. 입 안에 남은 갈치 가시를 정신없이 밥 위에 뱉었던 것이다. 그 후배는 어이없는 내 실수를 덮어 주려는 듯 “요즘은 밥을 먹어도 맛을 잘 모르겠고, 어떤 때는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경우가 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사이를 두고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저의 집 근처에 여학교가 있는데 요새는 그 애들이 다시 보여요. 등·하굣길에 큰소리로 떠들고 웃고 하는 게 예의 없다고 생각돼 평소 여간 못마땅한 게 아니었는데 그게 안 그렇게 보입디다.

 저만한 것들이 그 캄캄하고 추운 바다에…. 망나니면 어떻고 버릇없이 소리 지르고 다니면 어떻습니까?”, “며칠 동안 우리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배는 완전히 가라앉고 저따위 숫자나 고친 미친 짓 외에는…. 그래, 이게 무슨 나라입니까?” 이런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며칠 뒤 일본을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포기하려 합니다. 일본의 어느 평론가인지가 그랬다지요? 한국은 다시 옛날의 가난을 경험해 봐야 한다고요. 그래야 정신차린다는 뜻이겠지요. 몹시 자존심 상하는 말이지만 정말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뼈아픈 반성을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 말 끝에 동행한 한 사람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지만, 차라리 외양간이라도 진즉에 잘 고쳤으면 다음번 소는 잃어버리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우리는 교훈이라는 것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온 국민이 모두 우울증에 걸린 것 같아요. 집사람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해요.” 뒤쪽의 한 남자가 말을 꺼내자 앞서 그 여자 손님이 “생사람이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데…. 우리는 그 중계나 본 셈이 아닌가요?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고 눈물이 나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하고 응수했다.

잠시 후 “승무원들은 쓰레기였다고 해도 그 중에 의인이 있었다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 그 젊은 여직원, 여선생 같은 사람들 말이지요.” 쉰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몇 숟가락 먹지 않았는데 그만 목이 메고 입이 칼칼해져 갈치조림에 더 이상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좀 먼 쪽의 테이블에서 “세계적인 망신 아닙니까? 아이고 불쌍한 대한민국!”하는 말도 들렸다.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계시다면 제발 단 한 명이라도 살려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하는 들으라는 듯한 음성도 있었다. “허깨비 선장을 고용하는 선박회사나 그런 회사를 적격으로 허가하는 관서나 또 그런 관서장을 거느린 나라나…, 이게 말이 됩니까?” “우리 모두가 허깨비인가 보죠.” “맞아요.”

입맛이 가신 듯 후배도 수저를 내려놓고 물컵을 들면서 “우리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 자기 비하의 심정이 들지 않을 수 없어요. 이제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도 못하다는 열패감은 어쩌지요?”라고 했다. “그만 나갑시다. 참을 수가 없어요. 그냥 소리를 지를 것 같아요.” 다른 동행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럽시다. TV 없는 데로 갑시다.” “전 사건 이후 신문을 보지 않았어요. 배달되는 대로 거실 구석에 그대로 엎어서 쌓아 놓았어요.”

길로 나오자 한 동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이들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당치 않고, 명복을 빈다는 말도 거짓 같아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쩌고 하는 말은 더더욱 헛소리 같아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어요. 이 지경인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묵언,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땅바닥에 눈길을 준 채 일행은 4월의 저녁을 묵묵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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