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훈 객원논설위원/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

 세월호 참사가 난 지 한 달이 넘어가도록 그 충격과 슬픔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소비가 뚝 떨어져 경제성장이 예측치를 밑돌 것으로 추정되면서 당장 민생경제 회복을 걱정하게 됐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진상조사와 대책이 언론에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급기야는 일부에서 정권 퇴진 운동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사고 원인 내용을 살펴보면 선장과 선원의 무책임과 해경의 초기 대응 부실 외에 안전 관련 규정이 많기는 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이를 눈감아준 해당 부처의 공무원과 관련 단체의 유착 그리고 그의 뿌리가 된 소위 관피아 문제다.

고질적인 관피아 문제는 정부의 규제 기능이 있는 한 근본적으로 제거하기는 불가능하다. 공교롭게 얼마 전까지 정부는 창조경제의 핵심 과제로 규제 완화를 기치로 내걸고 대대적인 규제 철폐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금번 사고를 보면서 규제를 무조건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안전 관련 분야에서는 규제가 강화돼야 하고, 있는 규제는 더욱 철저히 집행돼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경제나 시장 관련 분야에서는 규제가 완화되고 철폐돼야 하겠지만 국민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치안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는 규제를 강화하고 그 집행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보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규제 관련 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지난달 10일에서 12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에 참가했었다. 조지 소로스가 주도해서 만든 ‘신경제사고연구소(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ing:INET)’의 연차 총회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연사로 참가해 중국경제세션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금번 총회의 주제가 ‘결국 사람이야!(Human After All!)’였는데 기존 주류경제학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대거 모여 성황리에 개최됐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스티글리츠와 제임스 헤크먼 외에 하버드대 총장과 오바마 정부의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역임한 래리 서머스, 그리고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덜 등이 주요 연사로 참가했다.

내가 발표한 논문은 현대 중국경제모델을 전통 아시아 사상, 그 중에서도 유가 사상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하는 내용이었다.

기존 중국 모델이 유가 중에서도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 그리고 순자의 사상을 발전시킨 법가의 사상에 기초한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향후 중국은 유가 중에서도 백성의 뜻, 즉 민심과 윤리·도덕의 중요성을 강조한 맹자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강조했다.

세월호 사태를 보면서 모든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식은 결국 제도와 윤리 두 가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다들 제도 개혁을 이야기하지만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제도를 개혁하는 것도 그것을 집행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바뀌지 않고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개각과 관료 개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우선 우리 모두가 남을 탓하지 말고 자기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을 되돌아보고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선생으로서 학생으로서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잘못한 일은 없었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해 사회의 지도층부터 바뀐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모든 것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문제를 호도하는 것이다.

제도 개혁을 할 것은 이번 기회에 철저히 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우리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에서 우리 국민 모두의 윤리와 도덕의식을 제고하는 조치와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승객들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진 선장과 선원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승객들에게 탈출하지 말고 대기하라고 엉터리 방송만 하게 해 수많은 어린 학생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이 이번 사건의 충격적인 진실이다.

이러한 어른들의 인면수심의 정신 상태가 우리 모두의 생얼굴일 수 있다는 소름끼치는 사실에 우리 모두가 충격받았다면 이번 사건이 우리 모두가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 수준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가 돼야 한다.

 이것이 또한 못다 핀 어린 영혼들의 희생을 그나마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우리 어른들의 속죄의 방식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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