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 그 개인적인 세상은 자신의 마음을 함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 앞이 아니라면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할수록 그 세상은 오히려 주변에 선명하게 드러나 버린다. 이는 자신의 모습이 이미 그 세계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자주 공상에 빠진다거나, 혼잣말을 중얼거린다거나, 외로움이 익숙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다.

이들은 자신만의 울타리를 단단하게 치고 외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 울타리는 언제라도 열릴 준비가 돼 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려 준다면 말이다. 영화 ‘문라이즈 킹덤’은 외로운 서로를 알아본 12살 소년·소녀의 운명과도 같은 만남으로 시작된다.

1년 전, 교회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샘은 까마귀로 분장한 소녀 수지를 보고 첫눈에 호감을 느낀다. 이후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 가던 소년·소녀는 급기야 사랑의 도피를 결의한다.

보이스카우트 캠핑 중 탈출한 샘은 가출한 수지와 함께 무모한 밀월여행을 떠난다. 마을에서 한참 떠나온 이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바닷가에 짐을 풀고 그곳을 ‘달이 뜨는 왕국(문라이즈 킹덤)’이라 이름 짓는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뽀로통한 얼굴로 일관하며 화가 나면 과격해지는 행동으로 인해 문제아로 낙인찍힌 소녀 수지. 그녀에게 친구란 오직 음악과 소설책뿐이었다. 반면 샘은 착한 아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쁜 구석이 있다고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자신감을 넘어선 조소하는 눈빛, 아이다움을 찾기 힘들 만큼 지나치게 빨리 철이 든 샘의 모습은 주변의 미움을 샀다. 게다가 그에겐 자신의 편이 돼 줄 부모조차 없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세상과 멀어져 외롭게 지내던 아이들은 서로의 소울메이트가 돼 상대의 아픔과 외로움을 보듬어 준다.

애틋한 마음으로 사랑을 키워 가는 소년·소녀와는 반대로 마을에서는 이들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이 벌어진다. 모든 스카우트 대원을 비롯해 수지의 가족, 경찰 그리고 샘을 고아원으로 돌려보낼 사회복지국 직원까지 총동원된 상황에서 이들의 은신처가 발견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쩌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을 고해야만 할 비극적인 운명에 놓인 아이들. 모든 악재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까?

2012년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세계 영화인들의 관심을 모았던 영화 ‘문라이즈 킹덤’은 웨스 엔더슨 감독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살아있는 동화 같은 작품이다. 마치 옛날 사진을 보듯 1960년대를 치밀히 고증한 패션, 건축 등의 미장센과 추억을 되살리는 음악은 관객들을 영화가 이끄는 시간여행에 기꺼이 동참하게 한다.

그리고 이들의 해피엔딩은 어느 한쪽의 승리-사랑의 도피 성공 vs 철없는 아이들을 떼어놓기 대작전-가 아닌 한발짝 양보하고 물러서서 서로를 이해하고, 그 과정을 통해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값진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함께 사랑하며 그 에너지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문라이즈 킹덤’이 구현하는 모두를 위한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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