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델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리어왕’,‘맥베스’, ‘햄릿’과 다른 점은 비극의 원인이 지극히 사적인 감정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 속 비극은 세계의 질서나 왕권의 정통성을 말하지 않는다. ‘오델로’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의처증으로 발전한 남자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의 손으로 파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언어를 통한 플롯 구성의 천재적인 면모가 셰익스피어를 통해 나타났다면, 화면 연출을 통한 영상미학을 탁월하게 포착해 낸 감독은 오손 웰즈를 꼽을 수 있다.

 1930년대 등장해 ‘시민 케인(1941)’이라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을 탄생시킨 웰즈 감독은 이후로도 50년에 가까운 시간을 영화에 바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오손 웰즈의 동명 영화는 자신이 직접 제작·각색·연출·주연이라는 1인4역을 담당한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1952년 칸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오손 웰즈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1600년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시작한다. 흑인 출신의 오델로는 당시 보기 드문 행운의 사나이였다. 그는 백인 사회에서 공을 세워 장군의 신분을 얻고 아름다운 귀족 여인 데스데모나를 아내로 맞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노력과 뒤따르는 행운으로 인해 행복의 정점에 선 오델로는 그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파멸의 구렁텅이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떨어지게 된다.

오델로의 허점을 노려 그를 비극의 문턱으로 안내한 자가 있었느니, 자신의 충실한 부하 이아고였다. 이아고는 현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흑인이 장군이자 귀족이라는 것도,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한 것도 그리고 바로 그 자가 자신의 상관이라는 것이 심사가 틀렸다.

게다가 자신의 자리라고 생각한 직위를 새파랗게 어린 후임 캐시오에게 빼앗기는 사태에 직면하자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에 이아고는 캐시오와 오델로를 한데 엮어 골탕 먹일 묘안을 짜낸다.

오델로의 아내 데스데모나를 미끼로 삼아 캐시오와 불륜관계라는 거짓 소문은 오델로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결국 질투심에 눈이 먼 오델로는 자신의 손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지만 이미 데스데모나는 자신의 품에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사랑에 실패한 남자 오델로의 이야기는 소재의 보편성으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비록 이아고라는 사악한 인물이 모든 비극의 열쇠를 쥐고 있기는 하나, 오델로가 겪는 파국은 자신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출신 배경에 대한 오델로 자신의 뿌리 깊은 열등감은 이아고가 심어 준 것이 아닌, 자신의 나약함에 기인한다.

 이아고는 그의 약점을 간파한 뒤 오직 세 치 혀만을 가지고 오델로의 마음에 의심과 질투라는 독을 주입한 것이다. 이후 오델로는 편협한 시선에 갇혀 삐뚤어진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지배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모든 것을 각색해 바라보고 왜곡된 것을 믿어 버렸다. 의심과 불신이 싹튼 마음 속에 데스데모나의 진심 어린 충고와 간절한 기도는 들리지 않았다.

오손 웰즈의 ‘오델로’는 영상으로 옮겨지면서 원작자인 셰익스피어 특유의 운문과 대사를 삭제하는 과감한 각색을 선보인다.

그렇지만 이는 대사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 등장인물의 의상이나 화면의 구도 등의 미장센을 통해 영화적으로 충실히 표현됐다.

때로는 새장에 갇힌 새처럼, 좁은 구멍과도 같은 편협한 마음처럼, 사랑했던 아내를 내동댕이치듯 내려다보는 차가운 시선처럼 영화 ‘오델로’를 채우는 영상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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