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전국 여느 도시보다 유난히 중국과 관계가 깊은 지역이다. 고사를 뒤지지 않더라도 백제 능허대와 인천항 개항에 맞춘 중국 조개지 설치, 차이나타운 조성, 한-중 문화축제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중국 관계에서 인천은 언제나 중심이자 처음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인천시는 일찌감치 ‘중국친화도시’를 선포하고 중국과의 다양한 관계 정립은 물론 유커(旅客·중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기호일보는 대중국 교류 중심지인 인천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 보고, 미래 인천이 중국과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점검해 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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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0년대 말 청국영사관이 있던 청국전관조계지

인천이 처음 중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1천600년 전인 백제시대부터다. 비류 백제가 현재 인천인 ‘미추홀’을 수도로 택한 뒤 ‘능허대’ 뱃길을 통해 중국과 약 100년간 무역 교류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능허대는 배에 물건을 뭍으로 내리거나 싣던 나루터를 말하며, 현재 연수구 옥련동에 터가 남아 있다.

 이후 인천은 1800년대 말 근대 개항을 맞으며 본격적인 중국친화도시로 자리매김한다.

 우리나라는 1882년 청나라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맺으며 중국과 근대 무역 교류를 본격화했다. 중국은 이후 1885년 오늘날 인천 제물포에 ‘청국전관조계’를 세우면서 ‘인천 화교(華僑)사회’가 등장한다.

 조계지는 개항장에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한 지역을 말하고, 화교는 중국을 떠나 인천에 둥지를 튼 중국인이나 그 자손을 말한다.

 이때부터 시작된 화교들의 인천 정착은 그 규모에서 타 지역을 압도한다. 1883년 63명에 불과했던 중국인 수는 1년 만에 235명에서 1892년에는 637명까지 늘어났고, 1900년 초반에는 1천여 명에 육박했다.

2015년 현재 인천에 살고 있는 중국인은 5만여 명에 이르며, 근대 개항기부터 정착해 거주하고 있는 화교까지 합하면 모두 6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인천시 중구 선린동 차이나타운

 인천과 중국의 인연은 중구 인천역 앞과 자유공원 인근에 자발적으로 조성된 ‘인천차이나타운’으로 절정을 맞는다. 차이나타운을 근거지로 한 화교 무역상인들은 비단·옷감·고추 등의 토산품을 중국에서 들여와 전국에 판매했고, 자연스레 차이나타운 일대는 화교들이 활동하는 주 무대가 됐다.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음식점과 기념품 등을 파는 상점이 자리해 있다. 매년 차이나타운에선 인천과 중국의 오랜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중국의 날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인천-중국의 날 문화축제는 1992년 한중 수교를 맺은 지 10년을 맞은 지난 2002년 처음으로 시작됐다.

 강옥엽 인천시역사자료관 전문위원은 "인천과 중국은 미추홀 백제를 시작해 근대 개항을 맞은 인천차이나타운 130년의 역사를 거스르며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며 "이처럼 오랜 우정의 역사를 자양분으로 잘 활용하는 일이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lj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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