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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기 칼럼니스트
사자성어 대기만성(大器晩成)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흔히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뤄진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이는 고대에 만(晩)자와 면(免)자가 통용돼 쓰였고, 필기구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그 뜻이 와전됐다. 도덕경 원문에는 대기면성(大器免成)으로 나온다.

면(免)은 ‘벗어날 면’으로 없을 무(無)나 아니 불(不)과 같이 쓰이는 단어로 원뜻을 풀이하면 ‘진정 큰 그릇에는 완성이 없다’라는 뜻이다.

이것이 대도무위(大道無爲, 대도는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는다)를 말한 노자의 사상과 일치한다.

 그릇에 인위적으로 한계와 경계를 짓는 순간 대기가 될 수 없다. 노자가 말하는 진정 큰 그릇은 마치 이 현황(玄黃)한 우주처럼 무한히 모든 공간과 시간, 물건과 사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노자는 ‘대도범혜(大道氾兮, 대도는 두루 펼쳐져 제한이 없다)’라 했고, YS가 생전에 정치화두로 삼았던 대도무문(大道無門, 대도는 문이 없어 거칠 것이 없다)도 모두 대기면성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첫째, 경제의 대기면성이다. 지금 야당이 세 갈래로 분열되고 여당도 내홍을 겪고 있어 마치 조선시대 붕당정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여야 간 경제법안, 민생법안은 제쳐두고 선거구 획정조차 못하고 있고, 죽기살기로 상대를 비방하고 흠집내고 있다. 성호 이익은 당쟁 격화의 원인을 관료 예비군에 비해 관직의 수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다. 그런데 모두들 작은 밥그릇에 매달려 싸움만을 계속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우선 내 밥그릇을 챙기는 싸움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익도 한전론이라는 거대한 토지개혁을 통해 정체된 농업의 생산력을 크게 높이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먼저 큰 밥그릇을 만들어야 농민들이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노사 간에 화합과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있을 때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다. 올해는 대기면성으로 우선 경제의 그릇을 크게 넓혀 밥그릇 수(일자리)를 늘려야 할 것이다.

 둘째 사상의 대기면성이다. 우리의 몸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돼 있고 생로병사에 얽매여 있다. 하지만 생각과 영혼은 자유롭다.

진정으로 큰 그릇은 좌우를 다 담을 수 있다. 대붕은 두 날개로 날지 않으면 추락해 세상에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

북한 세습독재정권은 지난 70년간 오로지 왼쪽 한 날개로만 날아 북한 인민에게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큰 재앙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자유의 이념으로 나아가 전 세계 축복의 모델이 됐다.

 하지만 근래에 사상적 분열과 갈등이 도를 넘었다.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칼을 들고 덤벼들려고 하고 있다. 인내와 관용, 통합과 상생의 정신이 사라졌다.

 대립의 경계선과 갈등의 한계를 뛰어넘어 분열보다는 상생으로 나아가 대기면성의 큰 도(통일)를 이뤄야 한다.

좌우, 빈부, 고저, 남녀노소, 인종 모두를 담아낼 수 있는 통합과 관용, 융합과 탕평의 그릇이 올해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좌파 10년, 우파 10년의 정권 다음에는 좌우를 아우를 수 있는 대기면성의 그릇, 즉 탕평의 10년이 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무슨 까닭일까. 좁은 관견을 벗어나 넓은 시야를 갖자.

 셋째 인격의 대기면성이다. 난 요즘 지역주민들에게 인사하러 다니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한 표라는 엄중한 사실에 부딪친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나이가 적은 사람이나 모두가 표 앞에서는 평등하다. 이것만큼 엄중한 사실은 없다. 내가 그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정말 마음이 낮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개봉된 영화 히말라야에서 나왔듯이 네팔인들이 인사하는 ‘나마스테’는 내 안에 있는 영혼이 당신의 마음에 깃든 영혼에게 인사합니다라는 뜻이다. 인사는 영혼과 영혼의 만남이고 연결이며 교류이다. 길에서 노점을 하거나 천변에서 노숙 차림의 사람들도 모두 ‘마하트마(위대한 영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은 말했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일생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만하면 됐다는 안일한 생각에 안주하지 말고 올해 좀 더 겸손하고 사랑하는 새로운 사람의 변화를 추구하자.

 난 김해 가야박물관에서 진흙덩이의 미완의 대기를 봤다. 윗부분이 마감처리되지 않은 거대한 토기였다. 이 그릇은 천지인을 능히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었다. 하지만 그 그릇도 부숴야 더 큰 그릇이 된다. 인격과 영혼에는 제한이 없다. 지금의 나를 깨부수고 더 새로운 인격을 향해 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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