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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
필자는 지난 4월 25일 ‘법의날’에 게재된 본란의 글에서 ‘법조인에게도 과연 윤리관이 있는가?’라는 제하에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오늘 하루만이라도 ‘법의 정신’을 되새겨봤으면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마음 한구석이 꺼림칙하고 편치 못했다. 제목이 좀 지나쳤나 싶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법정에서 단 한 사람의 억울한 시민이 없도록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신중히 재판에 임하고 있는 다수의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곧 사라졌다.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이 경찰과 검찰을 넘어 법원까지 유착됐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보석허가 등의 조건으로 부장판사 출신인 최모 변호사에게 20억 원의 수임료를 지불했으나 실패하자 정 씨는 수임료 반환 요구와 함께 최 변호사에 대한 폭행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또 다른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다. ‘과다 수임료’와 현직 판사에 대한 로비 의혹 등이 그것이다. 20억 원이라는 고액 수임료(성공사례비 포함 50억 원)가 수사팀과 재판부에 흘러들어 가지 않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검찰이 이 점을 파헤치겠다고 수사에 나섰다 한다.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불신 속에 착수한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그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곤 하면 으레 용두사미로 끝나곤 하는 예를 봐 온 국민들이다. 이번에도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식’으로 흐지부지 끝나서는 안 되겠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형 법조비리로 기록될 만한 사건이다.

 사회 불의를 타파하고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법조계다. 하지만 앞장서 질서를 파괴하고 안정성을 해치는 법조계의 퇴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로비스트가 정관계 고위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자기 과시하는 것쯤이야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담당 재판부 판사와의 술자리 대목에 이르러서는 백보를 양보해도 도저히 이해키 어렵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벌이는 속칭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가 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잊게 한다. 법조계의 막장 드라마다.

 설로만 나돌던 ‘판사에게 돈을 직접 먹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 사실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돈(金)이 정의(正義)’라고 정의(Justice)의 정의(定義)를 내리는 법조인으로 퇴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법복을 벗고 개업한 변호사들 중에는 보다 일찍 변호사 개업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법조인들도 있다 한다.

 이번에 고액 수임료로 논란이 되고 있는 최 변호사도 판사시절 따뜻하고 자상했던 인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는 보도도 있다. 무엇이 이 변호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하기야 돈은 귀신도 부린다 했으니 ‘재판부쯤이야…’ 했을 것이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50억 원이면 역대 단일 형사사건 중 최고 액수의 변론비가 아닌가 한다. 이것으로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가 세상에 또 한 번 확인됐다 하겠다.

 필자는 "검찰 고위직 출신 전관 변호사와 법원 부장판사 등이 관련돼 있어 검찰이 수사를 담당하면 공정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라며 특검수사를 촉구한 대한변협의 성명에 찬동한다. 우리 사회에 사법 불신 풍조가 도를 넘은 지는 이미 오래다. 대형 법조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법조계에 대해 실망과 낙담을 거듭하고 있는 필자는 그래도 믿는다.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을 운운하며 사무실마다 ‘파사현정(破邪顯正)’, ‘불편부당(不偏不黨)’ 등등 정의를 추구하려는 문구의 족자와 액자들을 걸어놓고 있는 법조인들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지는 미지수지만 이번 변호사 ‘고액 수임료 사건’은 속칭 ‘법조피아’에 의해 연출된 희대의 법조게이트라 하겠다. 법조! 너마저 정의(正義)의 얼굴을 한 야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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