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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학주!’ 그 두 번째 주인공은 인천 학익여자고등학교 문혜란(46)선생님이다.

 교직에 몸담은 지 21년째인 문 선생님은 이 학교에서만 3년째 학생부장을 맡고 있다. 앞서 근무했던 학교에서도 그는 체육교사란 이유로 학생부장, 일명 ‘학주’였다.

 모처럼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던 지난 10일, 점심시간밖에 시간이 안 될 것 같다는 그의 말에 학교 매점에서 빵과 음료를 사 들고 2층 학생부를 찾았다. 교문에서부터 경계심 가득해 보이는 학교안전도우미의 안내를 받아 겨우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문 선생님도 어차피 식사를 거를 것이란 걸 예상했는지 이날 학교급식으로 나온 야채튀김 몇 개를 식당에서 가져와 기자에게 내밀었다.

 "저도 학주란 말이 처음엔 의아했어요. TV 드라마에서 비춰진 학주의 모습을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에요. 예전처럼 선생님이 나서 아이들의 잘못을 꾸짖거나 지적하는 일이 많이 사라졌거든요."

 방금 수업을 마친 그는 체육교사답게 간편한 운동복 차림에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엄격함과 카리스마 넘칠 것이란 기대와 달리 그 역시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일반 여고 교사였다. 그래도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했다. 아무리 학생 자치의 가치가 존중되고 학교 체벌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는 학생들 사이에 가장 무서운 선생님, 학주가 아닌가.

 기자의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듯 그는 지난해 ‘스승의날’ 때 학생들이 준 상장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이 학교 학생회가 수여한 ‘팜므파탈상’이다. 상장에는 ‘위 선생님은 아침 등굣길에 불 같은 카리스마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지고 계시지만, 평소에는 귀여운 매력과 함께 옆집 아주머니 같이 푸근하기에 이 상을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와 몇 마디 나눌 사이도 없이 ‘따리라랏~따리랏, 따-다닷’ 점심시간을 알리는 요란한 벨소리가 울렸다. 이어 언제 식사를 끝냈는지 한 무리의 학생들이 학생부실로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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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원래 머리색이 갈색이에요", "전 교복 치마가 원래 짧았는데요"하며 학생부를 찾은 학생들이 문 선생님께 읍소 아닌 읍소를 했다. 학생들 자치조직인 ‘그린스쿨도우미’에게 벌점 대상 지적을 받은 것이다.

 문 선생님이 이 학교에 와서 3년째 운영하고 있는 그린스쿨도우미는 최근 사라진 학생 선도부 대신 학급장과 학년장 등 학생회 임원을 대상으로 운영된다. 이들은 매년 3월 문 선생님이 주관하는 ‘리더십캠프’에서 일정 교육을 받고 1년간 그린스쿨도우미로 활동하게 되는데, 그야말로 예전 학주의 역할을 대신한 학생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자치’조직이다.

 이들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매긴 상벌점을 매월 통계 내고 우리 반에 가장 많은 벌점 항목이 무엇인지, 누가 과벌점이 많은지 분석해 나름 대책을 강구한다. 벌점 15점이면 학교에서 주어지는 혜택은 물론 대학 진학에도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린스쿨도우미가 이 정도면 선생님께 벌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친구에게 미리 주의를 주고, 벌점 많은 친구에게는 봉사활동을 통해 상점을 받아 상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친구이기도 한 그린스쿨도우미에게 지적을 받은 학생들이 오히려 문 선생님을 찾아와 벌점 대상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물어 확인서를 받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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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입시에 학생부종합전형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학생들 스스로 규범에 벗어나지 않으려는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특히 리더십캠프를 통해 학생회 조직과 업무가 구조화되면서 ‘학생자치’가 이제 어느 정도 자리잡아 가고 있는 듯해요."

 문 선생님은 리더십캠프와 함께 매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학생회 임원들과 캠핑을 한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 오래지만 벌써 6년째 가족들과의 여름휴가 대신 학생들과의 캠핑을 빼놓지 않는다.

 문 선생님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경험이 있는 인천시 대표 육상 선수였다. 주 종목은 투포환. 1996년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임용시험에 붙어 교편을 잡았다.

 그는 학주 이전에 체육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공부만큼 운동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특히 문제가 있는 학생에게는 반드시 운동을 권한다. 운동선수 출신이어서가 아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학교가 체육부와 학생부를 통합, 체육교사에게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맡기고 있지만 성장기 아이들에게 운동만큼 좋은 치유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기억해요. 첫 담임을 맡은 반에 ‘일진’이라 일컫는 싸움 잘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 때문에 한 학기에 학폭위(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3번이나 열렸으니까요. 결국 그 아이를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학교에 사정사정해 럭비부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붙잡은 적이 있었어요. 나중에 운동하다 다쳐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지금도 많이 생각나는 제자입니다."

 문 선생님은 아무리 날씨가 안 좋거나 시험기간이라 해도 자신이 맡은 체육시간만큼은 빼놓지 않고 학생들이 땀 흘리게 시킨다.

 그는 교단에 있으며 두 명의 제자를 가슴에 묻었다고 했다. 첫 번째 사연은 중학교에서 남학생 반 담임을 맡았을 때다. 그 반에 대표적인 말썽꾸러기와 늘 조용하기만 했던 아이를 ‘짝꿍’으로 붙여 줬다. 처음에는 이들이 잘 어울리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말수가 적었던 아이가 아프다는 것을 알았고, 말썽 많던 녀석이 그 아이를 끔찍이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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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우정이 서로를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아 담임으로서 뿌듯했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한 아이가 병으로 그만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때 말썽 많은 아이가 학교까지 뛰어와 자신의 손을 잡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친구에게 데려다줬다. 그 아이가 자신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임종을 앞둔 아이를 보며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두 번째는 처음 학생부장을 맡았을 때다. 그해 근무했던 학교에서 한밤중 학생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평소에도 아픈 엄마 때문에 우울증을 앓아 온 학생이기에 각별히 신경을 썼지만 그런 몹쓸 짓을 할지 정말 몰랐다. 당시는 슬픔조차 느낄 수 없었다. 제자를 떠나보낼 자격도 없는 선생인 양 이곳저곳 불려다니며 책임을 추궁당했다.

 더 이상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교육자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敎)’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자라도록 ‘육(育)’도 해야 한다는 선배 교사의 꾸지람에 정신을 차리고 학생부장직도 놓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예전에는 부모도 포기한 아이를 교사가 어쩌겠느냐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여긴 학교잖아요. 아이들이 있을 곳은 학교뿐인 걸요. 그래서 그 어떤 아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부딪히면서 그들 스스로 갈등을 풀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고, 제가 잘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갈등은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낼 때 발생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감추고 침묵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이들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교육자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다음 시간 수업에 들어가기 위해 바삐 일어섰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홍콩 누아르를 좋아했는데, 그 중 ‘천장지구’란 영화가 기억나네요. 류더화(劉德華) 광팬이었거든요.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선생님이 있으셨나요.

 ▶중학교 때 과학선생님을 정말 좋아했어요. 키다리아저씨처럼 큰 키에 테니스 치시는 모습이 정말 멋졌거든요. 그분이 제 남편 고등학교 은사이시기도 하니 묘한 인연이죠.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운동이 있다면.

 ▶배드민턴이요. 누구나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니까요. 저도 동호인들과 즐겨 하는데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요.

 -가장 잘하는 요리는.

 ▶캠핑 가서 바비큐는 제가 가장 잘 굽니다. 특히 삼겹살볶음밥은 저와 같이 야영했던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최고였다고 할 거예요.

 -지금 가장 칭찬해 주고 싶은 학생이 있다면.

 ▶3학년에 장세리란 학생이요. 1학년 때부터 저와 학생회 일을 같이 했고, 지금은 전교회장으로 훌륭한 리더십을 보여 주고 있거든요.

 -운동선수 때 수상 경험은 있으신가요.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4위를 했어요. 당시 메달이 귀했던 육상종목에서 그 정도면 잘한 거 아닌가요. 국내 실업대회와 아시아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는 1등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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