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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기 ㈔인천언론인클럽 명예회장
"전 재산을 기부한 사람을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부도덕한 체납자로 몰다니…." 얼마 전 모 중앙일간지에 게재된 내용의 일부다. 이 같은 기가 찰 사연의 주인공은 평생 모은 200억 원대의 재산을 장학금으로 출연했다가 225억 원의 세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인 황필상(69)전 ‘수원교차로’ 대표다.

 황 씨는 2003년 모교(母校)인 아주대에 자신이 설립한 생활정보지 ‘수원교차로’의 주식 90%(약 219억 원)를 기부했다. 서울 청계천 빈민촌에서 자란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고학하는 후배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런데 5년 후인 2008년 수원세무서에서 황 씨에게 증여세 140억 원의 고지서를 발부하면서 악몽 같은 법정 투쟁이 시작됐다. 아주대가 증여세를 내지 않자 국세청이 황 씨에게 연대 납세의무를 지운 것이다.

 국세청은 대기업 편법 증여를 막으려는 상속증여세법에 따라 특정 기업에 주식을 5% 이상 넘게 기부하면 증여세 과세 대상이라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40년 규제에 묶인 공익법인 기부를 옥죄는 주식 5%룰이다. 선진국의 공익법인 주식 제한 규제는 한국은 5% 초과부터 과세하는 데 반해 미국 20%, 일본 50%, 영국과 독일은 상한선이 없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공익법인에 현금을 기부하면 증여세를 물리지 않지만 주식을 기부하면 세금을 물리고 있다.

주식에 대해서만 증여세를 물리는 법 규정은 1991년 처음 시행됐다. 일부 대기업 집단 오너들이 계열사를 우회 지배할 목적으로 문화재단이나 장학재단 같은 공익법인을 세운 뒤 주식을 증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당시 주식기부의 비과세 상한선은 20%였다.

 그러나 이 규제가 도입된 후에도 대기업의 변칙 증여가 사라지지 않자 정부와 국회는 1994년 비과세 상한선을 20%에서 5%로 대폭 낮췄다. 특정 기업의 주식을 5% 넘게 기부하면 초과분에 대해 증여세를 물리는 현행 제도가 이때 생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부 대기업의 불법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개인이나 민간단체가 설립한 공익법인에도 똑같은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200억 원이 넘는 주식을 아주대에 기부했다가 225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게 된 황 씨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했다가 고액 상습 체납자로 내몰린 황 씨는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서 7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22세 군대에 갈 때까지 부모를 도와 우유 배달을 했다며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꿨고, 먹고사느라 바빠 친구도 없었다고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군을 제대하고 26세 늦깎이로 1973년 아주대 전신인 아주공업전문대학 기계과에 입학했다. 악착같이 공부해 학과 수석을 차지했고, 학교 지원을 받아 프랑스로 유학 가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1985년 귀국 후 카이스트 교수를 지냈고, 1991년 생활정보지인 ‘수원교차로’를 설립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는 "빈민촌 출신인 나를 유학까지 보내 준 아주대에 감사하다"며 2003년 아주대에 현금 15억 원과 219억 원 상당의 주식을 기부했다. 자신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후배들을 돕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황 씨는 "선진국에서는 기부하면 행복해진다고 하지만 내 삶은 기부 때문에 망가졌다"며 "나 같은 사람이 있는 한 총주식의 99%(487억 달러, 약 55조 원)를 기부하기로 한 페이스북 저커버그 같은 사람은 한국에서 절대 나올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황 씨와 국세청 간의 법정 공방은 6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2010년 수원지법은 "장학사업을 하려고 기부한 주식은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며 황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011년 서울고법은 "법 조항이 불합리하더라도 법에 규정이 있으면 따라야 한다"는 취지로 국세청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최종 결정권을 가진 대법원은 4년 넘게 재판일정조차 잡지 않고 있다.

 2011년 수원교육지원청은 황 씨가 기부한 기부금으로 설립한 ‘구원장학재단’에 우수공익법인 표창을 줬다. 황 씨는 "국세청은 나를 탈세범 취급하는데 교육청은 표창을 주니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얘기냐"며 우리 정부가 과연 기부문화를 활성화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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