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선수단 감독을 맡았을 때도 체육 잡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오면 왠지 쑥스러워서 잘 안 했었는데…. 이렇게 기자 앞에서 얘기하려니 긴장되네요."

 학교에 들어서자 사람 좋은 웃음으로 기자를 맞는 이경주(53)선생님. 그러나 이 모습만 보고 버릇없게 대하려는 학생들이 있다면 큰 오산이다. 필요할 순간에는 엄격해지는 이 선생님, 남고생들의 경계 대상 1호인 일명 ‘학주’다.

올해 처음 인천 남동고등학교에 온 그는 오자마자 남고의 중책인 학생부장을 맡게 됐다. 이제 고작 3개월째, 정신없을 법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학생들을 치켜세운다.

 "요즘 들어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학생부장 맡기를 꺼려 하죠. 학생들에 대한 인권 요구가 많이 높아진 부분도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제가 학생부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어느새 적응이 돼서 이제는 부임한 지 1년도 넘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부담이 많이 됐는데, 아무래도 애들이 저를 돕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순하고 말썽도 없거든요."

 17년 전 근무했던 중학교에서 3년간 학생부장을 맡은 적이 있긴 하지만, 고교 학생부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체육교사라는 특성 때문인지 이전 학교에서도 곧잘 ‘학주’ 역할을 했던 그다.

 "언젠가 연수동에서 길을 걸어가는데 한 가게 주인이 저를 불러 세우더라고요. 처음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는데, ‘선생님, 예전에 저 선생님한테 많이 맞았잖아요’ 하면서 웃으며 얘기하는 겁니다. 그제야 기억이 났죠. 이제는 벌써 서른이 넘었던데, 그렇게 말썽부리고 사고 치던 녀석이 어엿하게 자란 것을 보니 뿌듯하더군요."

 그가 인문계 고교에 발령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청학공고, 해양과학고 등 실업계 고교에서만 근무를 했다.

 "이전 학교에는 담배 피는 학생들도 많고 외모에 관심도 많아 아이들에게 지적할 일이 잦았죠. 그에 비하면 여기는 흡연하는 학생도 거의 없고, 생활지도에서 걸려 봐야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는 정도입니다. 최근 학생들이 개별로 인터넷을 통해 작성하는 교육청 설문조사에서도 우리 학교는 학교폭력이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이렇게 아이들 자랑에 여념 없던 그의 얼굴이 어느 순간 걱정의 낯빛으로 바뀐다. 아이들에게 인자하던 이 선생님이 한순간 무서워지는 순간은 바로 인성 문제가 불거졌을 때다.

 "처음에는 이 학교에서 복장 등을 지적하면 아이들이 변명을 늘어놓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사실 이전에는 한 번 지적하면 아이들이 금세 수긍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인문계라 공부에 많이 신경을 써서 그런지 학생들이 예민하고 섬세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나쳐서 일부 학생은 인성 문제로 이어진 적도 있는데, 이런 학생들의 특성들을 이해하고 바로잡아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렇게 인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중학생이었던 자신을 지도했던 담임선생님의 영향이다. 그는 담임선생님을 ‘인생의 은인’이라고도 표현했다.

 중학교 시절 그는 소위 말하는 ‘짱’이었다. 당시에는 체격이 크다 보니 곧잘 싸움도 잘했고, 크고 작은 사고도 일으켰다. 그랬던 그가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다.

 "중학교 때 2년간 담임선생님이었던 기술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 선생님의 권유로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배드민턴을 배우면서 재미를 붙였지만, 싸움은 계속 일으키게 되더라고요. 그랬더니 이 선생님이 중학교 3학년 때 저에게 선도부장을 맡기시는 겁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저에게 책임감을 심어 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선생님의 생각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죠.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달 수 있는 배지가 있었습니다. 전교 20등 안에 들면 금배지, 50등까지는 은배지 이렇게요. 선도부장을 맡은 이후 금배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배지는 달게 됐답니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교사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갖고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3학년 10개 반, 2학년 2개 반의 체육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수업 시작 전 잠깐이라도 학생들과 인성과 인생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아이들의 성격과 목표를 파악하는 한편, 다른 친구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해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쓴소리일 수 있지만, 길게 봤을 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 믿고 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깨우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문계 고교는 대학 입시와 직결돼 공부에 신경쓰다 보니 몇몇 학생들이 인간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한 모습이 눈에 보이면 안타까운 마음에 무섭게 가르치는 편입니다. 그래도 제가 얘기하면 학생들이 잘 알아듣는 편이라 이런 부분에서는 마음이 놓입니다."

 그는 수업이 없는 시간 등 틈이 날 때마다 교내를 순회한다. 요즘에는 등교시간에 생활지도 대신 교통지도를 하기 때문에 학생들 지도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서다. 남고생들이라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이 학교에도 흡연하는 학생은 당연히 있다고 했다.

 "교내에 비밀 장소가 없다 보니 학생들이 주로 화장실에서 몰래 흡연하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수업하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마다 들러 냄새를 맡아 보는 것이 일과가 됐습니다. 몸에 직접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이 많이 쓰이죠."

 아이들 걱정을 늘어놓던 그에게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다가왔다. 그와 함께 아침마다 정문에서 교통지도를 하는 학생들이다. 이 선생님은 매일 아침 학교안전지킴이 학생들과 또 다른 교사 한 분과 교대로 교통지도에 나서고 있다.

 이 선생님이 학생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어 기자가 요청한 것이지만, 어느새 이들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교통지도 회의에 몰두했다.

 "정문 앞에서 유턴해 차에서 내리는 학생들이 위험해 보여요.", "정문 앞길이 좋은데 차들이 많이 서다 보니 교문으로 들어오는 학생들도 불편해요."

 학생들은 저마다 그동안 교통지도를 하며 느낀 문제점에 대해 의논했고, 이 선생님도 아이들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줬다.

 "사실 들어오면서 보셨겠지만 우리 학교 교문이 좀 위험한 편이에요. 교문 길도 오르막이고, 앞에는 횡단보도도 없는 2차로 도로라 혹시 사고라도 날까 조마조마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안전하게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죠. 그래서 조금이나마 아이들을 안전하게 하고 싶어서 아침마다 거르지 않고 교통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가 마무리될 무렵, 말주변이 없어서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다고 멋쩍게 웃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물었다. "학생들에게 어떤 교사가 되고 싶으신가요?"

 그러자 그는 또다시 선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학생들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주는 선생님이요. 제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인성 바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선생님 질문있습니다

-선생님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나요.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봅니다. 남들처럼 운동하는 것도 좋겠지만 컴컴한 영화관에 앉아 아무런 상념 없이 스크린에 집중할 때가 가장 편한 것 같아요.

 -학생 생활지도에 있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안전이죠. 우리 학교에는 주차장이나 정문, 엘리베이터, 강당 등 교내 16곳에 CCTV가 설치돼 있습니다.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저의 ‘눈’입니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특별한 추억이 있다면.

 ▶사실 운동부라 많은 친구들과 사귀지 못했어요. 정말 운동만 했거든요. 그래도 학교의 명예를 걸고 함께 땀 흘렸던 같은 부원들이 지금도 가장 많이 생각나네요.

 -특별히 예뻐하는 학생이 있나요.

 ▶매일 아침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이합니다. 선생님 눈을 피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큰소리로 밝게 인사하는 녀석들이 있어요. 정말 사랑스럽죠. 그 아이들이 저에겐 ‘박카스(피로회복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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