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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나무 군락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인천 출신 가수 송창식이 부른 ‘선운사’ 노래가사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그는 왜 인천이 아닌 전북 고창의 천년 고찰에 핀 동백꽃을 노래했을까. 아마도 그가 인천 섬마을에 핀 동백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임시공휴일까지 주어진 5월의 첫 주말, 동백꽃을 보기 위해 인천의 작은 섬을 찾았다. 선운사도, 남도도 아닌 한반도 서쪽 맨 끝 섬 백아도다.

행정구역상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한 백아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약 3시간을 가야 한다. 덕적도 진리선착장에서 내려 다시 덕적군도 5개 섬을 순항하는 나래호로 배를 두 번 갈아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홀수와 짝수날 나래호가 가는 방향은 다르지만 서해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백아도는 항상 중간 기착지다.

최근에는 백야도와 마주보이는 굴업도를 찾는 야영객이 늘면서 주말에는 배편 구하기도 힘들 정도다.

마침 짙은 해무와 함께 부슬비까지 내려 평소보다 섬을 찾는 여행객은 많지 않았지만, 긴 연휴 탓인지 정원 120명의 차도선 나래호 선실에는 자신 몸짓보다 큰 배낭을 짊어 진 젊은 백패커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해 비집고 앉을 틈도 없었다.

동백은 원래 10월에 진홍빛 봉오리가 고개를 내밀고 엄동에 활짝 피는 꽃이다. 옛 문필가들 역시 한 겨울 칼바람에 굴하지 않고 하얀 눈밭에 붉게 피어나는 동백의 절개를 노래했을 정도다.


이미 초여름 더위가 느껴지는 5월에 그 동백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는 게 무리였을까? 동백을 품은 백아도는 쉽사리 이방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듯했다. 해무와 파랑에 여러 번 접안을 시도하던 나래호는 간신히 선착장에 한 무리의 일행을 내려놓고 다음 기착지로 훌쩍 떠났다.

5월의 봄날이지만 유난히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날씨다.

백아도는 사람보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탄소배출량 ‘제로’의 국내 첫 에너지 자립 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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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어귀에 심어진 동백나무. 왼쪽 아래는 백아도 전경.
다. 인천시는 2014년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250㎾급 태양광과 10㎾급 풍력발전설비 4기를 설치해 이곳 주민 56명(21가구)이 별도의 에너지 공급 없이 신재생에너지만으로도 생활할 수 있게 했다.

백아도가 이처럼 보호받는 데는 여의도 면적의 2배가 채 안 되는 섬에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와 꽃, 진귀한 약초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야생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쇠물푸레나무, 신나무는 물론 익모초와 더덕, 맥문동 등이 넓게 분포돼 있다. 그 중에서도 난대식물에 속하는 동백나무가 이 섬 곳곳에 자생하고 있다. 특히 백아도와 불과 20~30m 떨어져 있는 오섬에는 동백나무 군락을 이뤄 이른 봄에는 석양빛에 섬 자체가 온통 붉게 보일 정도다.

이곳 동백나무가 이름을 알린 것은 국내 식물분류학계 최고 권위자인 이창복(서울대)박사가 1992년 발표한 학술지에서 "백아도가 ‘서해의 동백섬’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엄격한 의미에서 국내 최북단에서 자라는 자생 동백나무숲이 있기 때문이다"란 조사 자료를 내놓고부터다.

이전에는 인천의 동백나무는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된 옹진군 백령면 대청도의 동백나무를 최북단 자생종으로 여겼었다. 이후 「아름다운 섬 풀꽃나무이야기」의 저자 송홍선 씨도 2002년 펴낸 저서에서 "천연기념물인 대청도 동백나무는 훼손된 후 다시 심은 것으로, 순수 자생해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은 백아도가 유일하다"고 했다.

이들 섬에는 동백나무와 얽힌 비슷한 설화가 전해져 온다. 옛날 이곳 섬 처녀와 혼인을 약속한 청년이 자신의 고향인 남쪽 섬에서 붉은 동백을 가져다주겠다며 떠난 뒤 1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결국 그 처녀는 기다림에 지쳐 숨졌다는 것이다. 뒤늦게 다시 섬을 찾은 청년은 자신을 기다리다 숨진 처자의 무덤에 동백나무 씨앗을 심었고, 그 동백은 한겨울 눈 덮인 섬에 붉은 피를 토하듯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빨강 동백꽃은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란 꽃말을 지녔다.

"동백은 꽃 중에 가장 먼저 피잖아요. 어릴 적 동백이 피면 겨울방학도 끝나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나요. 지금도 붉은 동백꽃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어요."

이곳 토박이인 고봉덕(64)전 마을이장에 따르면 이곳 동백나무는 큰말에 약 20그루가 있고, 사람이 살지 않는 까막섬(오섬)에 30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또 예전 학교가 있던 작은마을로 통하는 옛길 정상 똥바위 근처에 3그루, 고개 너머 2그루가 자생한다.

학계에 보고된 자료를 보면 이곳 동백은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있는 홋동백으로 우리나라 자생종이다. 현재 약 150그루의 동백나무가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섬에는 높이 7m의 수령 100년 이상 된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곳 섬 주민들은 예전 그 많던 동백나무가 1980년대 염소를 방목해 키우면서 많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염소가 겨울 내 푸르른 동백나무 어린가지의 잎들을 다 먹어치웠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또 1990년대 중반까지 주둔해 있던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군인들이 동백나무를 분재용으로 쓰기 위해 뿌리째 캐 가기도 했다고 섬 주민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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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나무
이곳 섬마을에서 태어나 지금은 태양광발전소 설비를 가동하고 있는 이철호(35)씨는 "마을 사람들도 예전에 많던 동백나무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는지 지금은 집집마다 마당과 뒤뜰에 1~2그루씩은 동백나무를 옮겨다 심어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의 집 앞에도 그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까막섬에서 캐 온 동백나무가 여전히 붉은 꽃망울을 떨구지 않고 피어 있었다.

백아도 주민들이 많이 이전해 살고 있는 덕적도에도 그들이 이사 갈 때 가져간 동백나무가 상당수에 달한다. 덕적도 회룡마을과 서포리에 각각 70~100년 된 동백나무가 백아도에서 옮겨져 심어졌다. 인근 소야도에도 백아도에서 건너온 동백나무가 사철 푸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박사는 자신의 연구보고서에서 백아도에 동백나무 자생 군락이 형성된 것은 섬을 동서로 휩싸고 올라오는 난류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사계절 난류가 섬을 감싸면서 남방계 수종인 동백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식물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동백은 서양에 없는 꽃으로, 서양인들에게 동백은 ‘동양의 신비를 간직한 꽃’으로 불린다. 동백의 푸른 잎은 사계절 내내 윤기가 흐르고 겨울에 피는 꽃의 향기는 더욱 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동백은 생장속도가 느리고 그늘지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도 잘 자라 소금기 강한 해안가 절벽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이곳 섬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황정윤(62)씨는 "가지치기를 해도 잘 자라는 동백의 특성 때문인지 간혹 육지 사람들이 분재용으로 쓸 동백이 없냐고 문의해 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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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나무 군락
그는 또 "최근에는 섬을 찾는 관광객들도 늘면서 약초와 나물 등을 뿌리째 캐 가기도 한다"며 "동백나무 군락과 함께 섬의 자연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섬 전문가들은 이곳 동백나무 자생 군락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광자원화해야 한다는 의미 있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김용구(인천대 겸임교수)박사는 최근 인천시가 공모한 가치 재창조 아이디어 제안에서 "백아도 동백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보존하고, 자생종인 이곳 동백을 대량 재배해 고부가가치의 뷰티산업과 연계해야 한다"고 했다.

동백나무의 꽃과 잎, 열매 등은 천연염색 재료로 쓰이며, 동백씨 오일은 피부질환균에 대한 항균 효과와 함께 손상된 모발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화장품업계에서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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