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을 가로질러 그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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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1교시 수업을 마치고 난 후 쉬는 시간이었다. 교무실은 드나드는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교무실 들어서기가 왠지 껄끄러웠던 기억도 이곳에선 남의 얘기 같다.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분주한 파주여자고등학교 ‘생활안전인권부장’ 황학선 선생님을 만났다.

‘학주’라고 불리던 학생주임 자리가, 이 학교에선 학생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안전과 인권문제까지 교육하고 관리하는 자리로 바뀌었다.

"옛날에는 대부분 업무가 아이들 체벌하는 자리였지만, 이젠 인격이나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것까지 교육할 정도로 업무가 광범위해졌죠."

황 선생님이 명함을 건네며 던진 첫마디다.

영어교사인 그는 지난해 3월부터 생활안전인권부장을 맡아 1년 반 가까이 해 오고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엔 학교 안전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면서 그의 업무량도 함께 늘었다.

"수업 중에 다른 선생님들이 가르쳐 주도록 하는 것도 있지만, 제가 직접 나서 교통안전과 폭력예방교육도 시키고 흡연문제나 재난 등도 교육시키고 있죠."

여기에 성폭력을 비롯해 아동학대와 인권, 장애인 이해교육 등도 그가 전담하고 있는 분야다.

황 선생님은 교편생활을 파주여고에서 시작해 올해로 13년째를 맞고 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과를 졸업 후 국내 굴지의 구두회사인 엘칸토㈜에서 6년 가까이 근무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회사가 기울어 그만두게 됐다. 이후 학원에서 강사로 2년을 근무하다 교직에 꿈을 두고 35세 늦깎이 나이로 성균관대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졸업 후 이듬해인 2003년에 38살의 나이로 파주여고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했다.

그에겐 파주여고 학생들과 같은 또래인 고등학교 2학년 외동딸이 하나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생활지도를 할 때면 딸을 돌보는 아빠의 마음이 들곤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제 아이도 고2라서 그런지 애들을 상담하다 보면 마치 딸과 얘기하는 느낌이 들곤 해 정겨움이 많이 가는 게 사실이죠."

아빠의 마음으로 황 선생님이 지난해 초부터 학생들의 ‘인성’을 키우겠단 취지로 추진하고 있는 게 ‘인사 캠페인’과 ‘인사 경진대회’다. 요즘 아이들이 학교 선배에겐 인사를 잘 하지만, 교사나 웃어른에겐 인사를 하지 않아 그가 아이들 교육 차원에서 만든 실천운동이다.

그는 이 캠페인을 시작하면서부터 1년 넘게 교문 앞에 서서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반가워요!’라며 매일 아침마다 인사를 건넸다. 지금은 학부모들도 참여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고, 서로 사용하는 건물이 달라 아이들이 인사를 안 하는 경우가 많았었죠. 하지만 교사와 학부모들이 먼저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도 많은 것을 느꼈는지 먼저 인사를 합니다."

그는 인사 경진대회도 정기적으로 열어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기간을 정해 놓고 교사들이 인사를 잘하는 학생들의 명단을 적어 제출하면 이를 평가해 상을 준다.

인사 캠페인과 경진대회로 학교 분위기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외부에서 온 손님들도 "아이들이 인사를 참 잘 한다"고 얘기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황 선생님은 "인사를 받아서 선생님 기분 좋아지는 것은 나중 문제고,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사회에 나가 바른 인성을 키워 주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라며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인사는 꼭 열심히 하고 졸업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이라며 웃었다.

그가 ‘학주’를 맡고부터 새롭게 만든 또 하나가 ‘학교 부적응 학생 가정방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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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방문이라고 하면 벌써 수년 전 촌지 문제 등으로 없어진 제도지만, 그가 하고 있는 것은 과거와는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그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일단 가정에서 부모와의 문제가 발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아이와 부모 간 가교 역할을 해 주겠단 생각으로 가정방문을 해 오고 있다.

방문 전에 미리 준비할 것도 많다. 일단 부적응 학생에게 ‘아빠의 장점 10가지’와 ‘엄마의 장점 10가지’를 적어 내도록 한다. 그리고 다음 날은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미, 관심사 등 개인 세부 신상을 적도록 한다.

가정방문을 며칠 앞두고는 학부모에게도 전화통화를 해 ‘자녀의 장점 10가지’를 적고 딸에게 편지를 써 놓도록 한다.

가정방문을 하는 날에는 먼저 아이에게 부모의 장점과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를 읽도록 한다. 그리고 부모 또한 아이의 장점을 읽고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읽도록 해 서로의 마음을 열어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엄마들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 대부분은 구구절절하고 진실한 내용이 많아 대부분 엄마들이 편지를 읽다가 여러 가지 감정에 북받쳐 우신다"며 "그러면 아이도 따라 우는 경우도 있고, 부모와 자식 간 관계가 눈에 띄게 회복된다"고 말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부모와 학생 사이에 앉아 퀴즈대회 사회를 본다. 아이가 작성했던 개인 신상에 대해 학부모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맞히도록 하는 것이다.

"부모님 입장에서 자녀를 잘 알 것 같지만 모르는 게 많아요. 자녀 꿈이 뭔지, 뭘 좋아하는지, 지금 고민이 뭔지, 뭘 바라는지 자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아시고 애정을 가져 달라는 취지로 질문을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함께 퀴즈까지 풀고 나면 아이들 가정 분위기도 달라지고, 학교생활 부적응도 이전과는 달리 많이 개선된다는 것.

요즘 황 선생님은 게이트키퍼(Gate Keeper)란 제도를 새롭게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학교에선 식당 이용을 위해 친구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식사를 하는 ‘밥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 팀에 끼지 못하면 밥 먹을 친구가 없어 아예 굶어 버리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직접 나서 따돌림 당하는 학생을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사전에 신청한 주변 친구들 몇 명이 팀을 짜서 당사자인 따돌림 당하는 아이 모르게 계속 밥을 같이 먹도록 권유하고 함께 어울리도록 해 그 아이를 키핑(Keeping) 즉, 보호해 주는 거죠."

그는 게이트키퍼가 몇 팀이 나올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우수한 팀을 골라 시상해 주겠다는 계획이다.

황 선생님은 교편을 잡으면서 스스로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다. 하나는 영어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영어의 맥과 기본 원리를 제대로 짚어주겠다는 것이다. 영어 공부를 10년 넘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어려움을 호소할 정도로 영어라는 게 어려운 학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몇 명이 될지는 모르지만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구제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생 안내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생활안전인권부장을 맡으면서 업무에 치여 힘이 들 때면 수첩에 적어 놓은 이 두 가지 약속을 되새기곤 한다.

다만, 학생들을 무 자르듯이 틀에 넣어 규제하는 대신 아이 특성이나 성향에 맞게 유연성 있게 대처한다는 생각이다.

"소외받지 않고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는 학생들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지금 당장의 제 좌우명이자 목표입니다."

오늘도 황학선 선생님은 아이들의 게이트키퍼를 하느라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취미생활은 무엇인지.

▶테니스를 자주 합니다. 학교 안에 테니스장도 있고, 제가 동료 교사 테니스회 총무를 맡고 있어요. 제가 사는 동네 테니스클럽에 가입도 해 주말이면 따로 치기도 하죠.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다면.

▶일산초등학교 5학년 때 홍범기 담임선생님이 제일 많이 기억에 남네요. 그분이 제게 많은 자신감을 주셨거든요. 제가 좀 내성적이었지만 자꾸 발표시키고 잘 할 수 있다 해 주시다 보니 5학년 말 때는 자신감이 철철 넘쳤거든요.

-아빠를 닮아 따님은 영어를 잘하는지.

▶사실 제 딸은 영어를 별로 안 좋아해요. 필요할 때마다 단어장도 만들어 주고 다 외우면 상금도 주고 했지만, 지금은 영어보단 일본어를 더 좋아하더군요(웃음). 아빠가 영어교사인데 일본어를 좋아하니까 좀 서운하긴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영어를 좋아하셨는지.

▶영어를 썩 좋아했던 것은 아니고 국사나 윤리 같이 생각을 많이 하는 과목을 더 좋아했어요.

-앞으로 꼭 해 보고 싶은 인생계획이 있다면.

▶아직까진 막연한 생각이지만 퇴직하면 글을 쓰고 싶어요. 시나리오도 좋고 소설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파주=김준구 기자 kim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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