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의 한 어민이 불볕더위 속에서도 다음 출어를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연평도=이재훈 기자 ljh@kihoilbo.co.kr
▲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의 한 어민이 불볕더위 속에서도 다음 출어를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연평도=이재훈 기자 ljh@kihoilbo.co.kr
연평도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평화롭던 섬마을 연평도가 북한군의 포격으로 불바다로 변한 지 6년이 흘렀지만 이번엔 북한군 포격 위협에 더해 중국 어선 불법 조업으로 또다시 살길이 막막해졌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나들며 연평도 앞바다를 무법천지로 만든 중국 불법 어선은 우리 해군과 해경안전본부의 합동 단속으로 잠시 자취를 감췄지만 언제 다시 출몰할지 몰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정부와 인천시가 뒤늦게 서해5도를 지키겠다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연평도 어민들은 기약할 수 없는 약속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19일 짙은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평도 앞바다에 새벽같이 꽃게잡이를 나선 어민들이 그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찌감치 출항에 나선 31척의 연평도 고깃배들은 간간이 올라오는 꽃게를 보며 답답한 한숨만 내쉴 뿐이다.

새벽같이 일을 나간 어민들은 잠시 쉴 법도 하지만 일손을 놓지 못한다. 한낮 체감온도가 30℃에 가까운 땡볕에도 다음 날 조업을 위해 그물을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다.

다행히도 이날 연평도 앞바다에 출현한 중국 불법 조업 어선은 10척에 그쳤다. 이달 초 하루 평균 208척이던 중국 어선은 보름을 지나면서 하루 한 자릿수 이내로 줄었다. 참다 못한 연평도 어민이 직접 중국 어선을 나포한 뒤 해군과 해경안전본부 단속이 늘었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 불법 조업으로 연평도 꽃게의 씨가 마르다 보니 연평도 주민들의 일상도 고달프다.

당장 어물망 관리 등으로 품을 팔던 노인들과 주민들은 일손이 줄어 생활비 벌기도 힘들어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인들은 사실상 집 밖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박태환(74)연평도 노인회장은 "연평도에 포격이 난 뒤 그나마 공공근로를 늘려 줘서 노인들이 용돈벌이를 했는데, 요즘은 아무것도 못하고 뒷방 늙은이가 됐다"며 "남부리에만 나 같은 노인이 100명이나 되고, 5개 마을까지 합치면 수백 명이 일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어민들의 걱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조업을 나가 봤자 인건비와 기름값 빼는 것도 빠듯하다.

급기야 어민들은 "정부든, 인천시든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며 울분을 토한다.

박태원(56)연평도 어촌계장은 "우리 어민의 중국 어선 나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며 "무려 18년 동안 중국 어선이 출현했고, 그때마다 해경과 정부가 남북한 군사관계를 핑계로 방치하다시피했다"는 하소연이다.

송도경 연평면 어민회장도 "우리 정부가 연평도민을 버리면 안 된다"며 "수십 년간 정작 우리 어민을 지키지 못한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연평 주민들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유정복 인천시장과 조윤길 옹진군수 등이 이날 연평도를 찾아 주민들을 위로했다.

연평면사무소에서 2시간가량 진행된 간담회에 참석한 주민대표 20여 명은 남북 수산물 공동판매장과 조업환경 개선, 서해5도 공동대책협의체 구성, 새우어시장 보호, 여객선 운임비 지원, 해수담수화 설치, 연평신항 건설, 소연평도 국가어항 지정 등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연평도=이재훈 기자 lj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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