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정상과 영국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영국의 EU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첫 대면해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EU를 이끄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영국의 '과실만 따먹기'는 차단하겠다고 포문을 열었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는 EU의 이민정책 실패에 책임이 있다고 맞섰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정상회의 전 독일 연방의회(분데스탁)연설에서 "영국은 탈퇴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과실 따먹기'(Rosinenpickerei·cherry picking)는 배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독일어 로지넨피커라이(Rosinenpickerei)는 빵에서 건포도만 쏙쏙 뽑아먹는 이기적 행동을 가리키는 말로,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서도 EU회원국으로서의 특권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메르켈 총리는 "가족에서 탈퇴하기를 원하는 누구라도 특권만 누리고 의무는 하지 않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EU 회원국 의무를 다하지 않는 한 EU 단일시장에 접근할 권한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EU 탈퇴 진영을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전날 EU 단일시장 접근도 유지하고 영국민의 거주 이전과 노동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새로운 영국-EU 관계를 만들겠다고 한 데 대해 답변한 셈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존슨 전 시장은 일간 텔레그래프 기고문에서 "자유무역과 협력을 바탕으로 새롭고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며 EU 단일시장 접근이 유지될 것임을 시사했다.

또 "영국인들은 종전처럼 EU 국가로 가서 일하거나 거주하며, 여행하고, 공부하고, 주택을 사고, 정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민에게 '자유롭게 이동하고 거주할 권리'와 '노동자의 자유이동' 등 EU 조약에 담긴 기본권이 보장될 것이라고 약속한 것이다.

반면 그는 투표 운동 기간 영국에 들어오는 EU 시민권자에 대해선 호주의 포인트 방식의 이민 제도를 두겠다고 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정상회의에 도착해 "영국이 유럽에서 오는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으면 영국도 EU 단일시장에 접근할 수 없다"며 앞으로 EU와의 관계에서 '체리피킹'은 불가능하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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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정상회의에서 만난 캐머런 영국총리(왼쪽)와 메르켈 독일총리(가운데)(AP=연합뉴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날 EU 정상회의 만찬에 참석해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탈퇴 결정이 나온 원인이 EU의 이민정책 실패에 있다고 주장했다

캐머런 총리는 "대량 이민과 자유로운 통행에 대한 큰 우려가 브렉시트 국민투표의 동력이었다"며 "EU 회원국간 자유통행 문제는 탈퇴 협상에서 해결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과 EU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최대한 친밀하게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도 이주자를 대량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캐머런 총리와 메르켈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향후 영국과 EU 양측의 협상이 험로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고 전했다.

영국은 10월 사퇴할 캐머런 총리를 이을 차기 내각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참여시켜 이에 관한 청사진 마련 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총리가 되든 영국 정부는 투표 기간 국민들이 판단 근거로 삼았던 EU 탈퇴 진영의 공약들을 지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영국 차기 정부는 협상 전략을 충분히 마련한 후 비공식 협상부터 벌이겠다는 입장이지만 EU 측은 비공식 협상은 없다고 확인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집행위 관계자들에게 탈퇴 절차를 규정한 리스본 조약 50조가 발동되기 전에는 영국과 비밀 회동을 하지 않도록 당부했다"고 말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리스본 조약 50조를 영국이 발동하기 전까지 어떠한 공식·비공식 협상도 없다"며 영국 정부가 공식 협상 개시를 늦지 않게 통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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