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 2007년 세상을 뜬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불린다. 이 둘은 앙숙관계로 유명했다. 모두 스페인에서 태어났는데, 마드리드와 카탈루니아다.

카탈루니아인들은 스페인 내전 후 자결권을 얻는 데 실패하고 마드리드 지역으로부터 독립이나 최소한의 자치권을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해 왔다. 세계적인 두 테너도 이러한 적대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급기야 둘은 한 무대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그런데 걸그룹보다 더 바쁜 스케줄에 쫓기던 호세 카레라스가 덜컥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미국까지 가서 치료를 받느라 주머니에 땡전 한 닢도 남지 않게 됐다.

치료비 걱정에 발을 구르던 그에게 한 줄기 빛 같은 소식이 들렸다. 마드리드 지역에 백혈병 환자들을 돕는 재단이 있다는 것이다. 카레라스는 이 재단의 지원을 받아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해 꿈에 그리던 무대에 다시 올랐다.

과거 명성을 되찾은 그는 회원에 가입하기 위해 재단을 찾았는데, 정관을 읽고 난 후 뒤로 자빠졌다. 재단의 설립자가 바로 앙숙인 플라시도 도밍고였다. 자신을 위해 재단이 설립됐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카레라스는 도밍고가 공연하고 있는 공연장으로 달려가 청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감사를 표했다. 훗날, 플라시도 도밍고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앙숙이었던 호세 카레라스를 도왔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보 오피니언란 서해안 코너에 게재될 글을 쓰느라 가뜩이나 없는 머리칼을 쥐고 흔들고 있다. 재입사해 네 번째다. 내가 쓴 글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 아마도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가장 큰 의미로 꼽을 것이다.

며칠 전 출입처 안성시청. 취재를 위해 한 부서에 들렀다. 한 후배 공무원이 반기며 커피가 든 종이컵을 건넨다. 그 친구가 묻는다. "서해안은 또 언제 쓰세요? 많은 직원들이 재미있어 하던데요. 저도 잘 읽고 있습니다." 감동이었다.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읽는 맛과 감동을 겸비한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하겠다고. 내가 쓴 글을 기다리면서까지 찾아 읽어 주는 독자를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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