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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환 <인천도시공공성네트워크 공동대표>
인천시가 인천상륙작전기념관과 함께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국립화하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취임 2주년을 맞아 ‘인천의 주권시대’를 선언했던 인천시는 두 기관의 국립화를 통해 문화주권을 실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그나마 인천이 갖고 있는 소중한 역사문화유산과 주권을 유지하기 버거운 상황을 명분 없는 논리를 내세워 문화주권의 포기하는 무책임한 행정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인천시가 내세운 명분은 이렇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 12일 만에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서 국립화 추진을 이슈화하는 데 최적기라는 것이다. 인천시는 이 영화의 상영에 맞춰 인천시 예산을 들여 특별시사회와 전시회를 마련하고, 대대적인 홍보전에 들어갔다. ‘인천 가치 재창조’ 시책을 밀어붙이면서 인천을 ‘호국·보훈의 도시’로 명명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군사정권 시절인 전두환 정권기에 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장소와는 관련이 없는 청량산 기슭에 1984년 9월 15일 개관했다. 그런데 이 기념관을 짓기 위해 인천시 시비 28억 원, 시민 성금 15억 원 등 총 43억 원의 비용이 투입돼 건립됐다고 한다. 동족간의 전쟁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한 작전을 승전으로 기념하는 이 기념관은 건립 목적이 불온하긴 하지만, 그나마 인천시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다크투어리즘의 현장으로 나름 의미가 없지 않고, 지난 30여 년간 매년 인천시민의 혈세로 유지해온 공간이다. 그런데 왜 국립화 한다는 말인가?

 더 문제적인 것은 이민사박물관을 국립화 한다는 급작스런 방침이다. 이민사박물관은 1903년 제물포항을 통해 최초로 해외 이민에 나섰던 하와이 이민을 기념하기 위해서 지난 2003년 하와이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이민사박물관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박물관 건립과 유물 수집을 거쳐 2008년 6월 13일 개관한 인천만의 고유한 역사문화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을 짓기 위해서 하와이 동포를 비롯한 해외 동포들의 기금과 인천시민의 예산을 115억여 원을 들여 만든 것이다.

 건립 당시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이민사박물관에는 시대별로 하와이 이민의 역사와 함께 미국, 중국, 러시아, 중남미 등 해외 한인사회의 성장사를 기록한 자료와 유물 4천여 점이 전시돼 한국이민사를 독보적으로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인정받아왔고, 전문 학예사들의 해외 네트워크와 참신한 기획을 통해 근현대 시기 한국 이민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특별전시를 꾸준히 보여줬다. 그 결과 인천의 한국이민사박물관은 단순한 박물관의 의미를 넘어 해외 동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소중한 인천의 문화인프라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세계를 이어주는 소중한 문화콘텐츠이자 문화상징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연전에 서울시가 이민사박물관이 갖고 있는 역사적, 현실적 가치를 헤아려 서울시 차원에서 이민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인천시는 지난 3월 월미도에 있는 이민사박물관의 독자성을 지키고 유사한 명칭 사용으로 인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상표등록을 출원할 계획까지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국립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이를 국가에 헌납하려는 것인가?

 지난 2014년 재정위기를 겪던 인천시는 정부로부터 이민사박물관 증축에 따른 매칭펀드 제안을 받고서도 예산을 마련하지 못해 이민사박물관 증축을 포기한 적이 있다. 이번에 불거진 이민사박물관의 국립화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인천시의 재정위기를 털어내기 위해 나온 고육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천시민과 하와이 동포들의 소중한 헌금으로 어렵게 마련한 이민사박물관을 국립화 하는 것은,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는 것도, 인천의 주권을 실현하는 것도 결코 아닌, 인천의 소중한 문화인프라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천의 유치한 국가 산하의 공기업들을 보라! 낙하산들만 날아올 뿐, 인천시민의 삶과는 무관한 저들만의 행정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인천시의 문화예산으로 운영되던 이들 기관마저 국유화해서 손을 털려는 것은 인천의 문화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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