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꽃, 무궁화.

7~8월 동네마다 흔히 볼 수 있는 무궁화를 찾아간 곳은 인천연안부두에서 뱃길로 178㎞ 떨어진 서해 최북단 백령도다. 이곳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큰 무궁화나무가 있어서다.

여름의 끝자락까지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육지 날씨와 달리 이곳 백령도는 어느새 가을이 성큼 다가와 곡식이 무르익고 있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가 신작로 길가에 널려 있고, 들판의 벼는 무거운 고개를 떨군 채 이방인을 반겼다.

수령이 100년이나 된다는 이곳 무궁화나무는 용기포 선착장에서 차로 20여 분을 달려가야 하는 섬 반대편 연하리에 심어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복음 전례지로 알려진 중화동교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연하리에는 나지막한 마을 담벼락에 당시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 누가 이곳에 무궁화를 심었을까

마을 초입 정자가 있는 너른 마당에 고추를 널고 배를 가르고 있는 한 노인에게 물었다. "저 무궁화나무는 언제, 누가 심었을까요." 이곳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화동교회의 원로 장로 조순만(78)씨다.

그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무궁화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정확히 언제 누가 심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혹시 새로 부임한 목사님이 알 수도 있다"며 기자를 교회당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이 교회 담임목사인 조정헌(55)씨도 정확히 무궁화나무에 대한 사연을 알지 못했다.

조 목사는 "1898년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을 당시 무궁화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마을 담벼락 벽화에 옮겨 그린 빛바랜 사진에서도 교회당 앞에 무궁화나무가 있는 것을 보면 족히 100년은 더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지정된 것도 ‘갑오경장(1894년)’ 이후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신문화에 밝았던 개화파 허득(許得)이 이곳 교회를 설립하면서 무궁화나무를 심지 않았을까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후 만들어진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구절이 들어가면서 무궁화가 지금의 국화가 됐다는 것이다.

# 나라꽃 무궁화가 아프다

▲ 중화동교회 벽화에 그려진 흑백 사진에 무궁화 나무(오른쪽)가 선명하다.
일반적으로 무궁화나무는 40~50년을 살지 못한다. 하지만 연하리 무궁화나무의 수령은 우람한 그 외형만으로도 족히 100년은 더 산 것으로 보인다.

키 6.3m에 가슴둘레 60㎝의 무궁화나무는 현존하는 국내 무궁화나무 중에서도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꽃잎과 꽃술 부분이 붉은 재래종이어서 그 보존 가치가 크다.

그러나 예전 같으면 이미 만개했을 꽃봉오리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나뭇잎도 크지 못해 사이사이로 가을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아직 피지 못한 꽃봉오리는 새끼손가락 끝마디 정도로 작다. 육지 같으면 이미 활짝 피었을 꽃도 여럿 보인다.

원래 우리나라 토종 무궁화는 개량종에 비해 꽃봉오리가 작고 개화 시기도 조금 늦다. 하지만 이처럼 개화가 늦은 것은 나무가 수명을 다해 뿌리에서부터 영양 섭취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 진단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우리 해군의 초계함 ‘천안함’이 피격 당했던 2010년 큰 태풍이 불어 무궁화나무가 반쯤 뽑혀 뿌리에 손상을 입었다고 했다. 이후 산림전문가들이 대대적인 보강 조치를 하고, 문화재청도 천연기념물(제521호)로 지정해 보호에 나섰지만 상태는 크게 호전되지 못하고 있다.

▲ 중화동 교회와 무궁화 나무.

조 목사는 "지금도 백령도를 찾는 관광객 중 상당수가 필수 관광코스로 이곳 교회당과 무궁화나무를 보기 위해 어려운 발걸음을 하고 있지만, 시름시름 앓고 있는 나무를 보며 안타까워한다"고 전했다.

# 통일의 꽃으로 다시 활짝 피기를

백령도에서 마주 보이는 북녘 땅 장산곳은 10여㎞ 떨어져 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천안함 피격 이후 무궁화나무도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게 마치 냉랭하기만 한 지금의 남북관계를 연상케 한다.

옹진군에서는 매년 풍뎅이가 갉아 먹은 나무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외과 수술을 하고 영양제를 주고 있지만 발육 상태는 예년만 못하다. 국립산림과학원도 나무의 DNA를 채취해 복원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섬을 찾은 관광객 장경술(45·서울)씨도 "오래된 무궁화나무의 멋진 모습을 볼 것이란 기대에 힘들게 찾아왔는데, 꽃마저 시들한 모습에 적잖이 실망했다"며 "다시 활짝 펴 통일의 꽃으로 만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여름이 끝나가는 8월 말 현재도 무궁화 나무에 꽃이 만개하지 못 했
연하리 주민들도 100년 된 무궁화나무를 보기 위해 마을을 찾는 관광객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도록 몇 해 전부터 마을 입구에 새롭게 무궁화나무를 심어 가꾸고 있지만 좀처럼 확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흔한 코스모스가 길가를 점령했다.

연하리 전응순 전 이장도 "언제부턴가 마을에 무궁화를 심어 특화시키려 하고 있는데 뜻대로 잘 안 된다"며 "우선 교회(장화동) 무궁화나무부터 살려 놓고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 무궁화나무가 번성해 북녘 땅까지 애국가 가사처럼 무궁화가 삼천리 방방곡곡 만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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