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본토를 겨냥한 테러 희생자 유가족이 책임 있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9·11 소송법'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을 뒤집고 미국 의회에서 재의결되자 아랍 세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아랍권은 미국이 테러에 희생된 자국민을 위해서만 정의를 내세우고 있다며, 세계 각지에서 과도한 개입으로 논란을 빚은 미국이 이번 법안으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현재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미국과 '9·11 소송법'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러한 게시물들은 트위터에서 'JASTA'와 "미국의 테러리즘'라는 아랍어 해시태그를 단 채 퍼져나가고 있다.

JASTA는 9·11소송법의 공식명칭인 '테러행위 지원국들에 맞서는 정의'의 알파벳 약자다.

아랍 트위터 사용자들은 일본, 베트남, 이라크 등에서의 미군 활동을 담은 사진들과 함께 "일본과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은 JASTA가 빨리 시행되길 원한다. 왜냐하면,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니까"라는 비난 글을 올렸다.

'9·11 소송법'을 풍자하는 트위터 게시물 [트위터 캡처]
'9·11 소송법'을 풍자하는 트위터 게시물 [트위터 캡처]

이들이 올린 사진에는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모습과 함께 미군이 떨어뜨린 네이팜탄을 맞은 베트남 소녀가 알몸으로 뛰쳐나오는 장면 등이 담겼다.

또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미군이 수감자에게 모욕적인 고문을 가하며 웃고 있는 사진도 있다.

다른 트위터 사용자는 일본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후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사진을 보며 한 소년이 아버지에게 "어느 테러집단이 이런 짓을 했느냐?"고 묻는 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의 2005년 만평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의 일본 원폭 투하를 비난하는 만평 [트위터 캡처]
미국의 일본 원폭 투하를 비난하는 만평 [트위터 캡처]

또 미국의 코미디언 에디 그리핀이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 개입을 두고 "돈, 돈, 돈" 때문이라는 말하는 동영상은 750번이나 공유됐다.

미국 내 전문가들도 이번 법안으로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며 다른 나라에 자신의 규칙을 강제하려 한다는 인식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우려를 제기했다.

브라운대 왓슨 국제문제연구소의 스티븐 킨저 선임 연구원은 "세계는 이번 법안을 미국이 자신의 기준과 법을 전 세계에 적용하려는 일련의 시도 중 하나라고 여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이번 법안으로 역으로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 등을 상대로 소송이 제기되는 등 미국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도 사설을 통해 '9·11 소송법'은 미국 사법 제국주의의 연장으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법안이 미국에겐 자충수와 같다며 "외교정책을 소송에 맡기며 문제를 키우기보단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법안의 주 대상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법안은 "재앙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9·11 소송법'은 9·11 테러 희생자 유족들이 테러 연루 의혹을 산 사우디를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마련됐다.

사우디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는 아주 중대한 문제다"라며 "주권 면제를 침해하는 것은 미국을 포함해 모든 나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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