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를 꼽자면 아마 ‘자유’, ‘행복’, ‘풍요’, ‘여유’ 등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 고교 교육 현실은 한마디로 ‘입시 지옥’이라고 표현하는 이가 많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입시 지옥의 현장이 아닌 행복한 천국으로 바꿔 주는 열쇠는 뭘까? 그 답을 찾고 있는 곳 중 하나가 화성시에 위치한 대안교육 특성화고등학교인 두레자연고등학교이다.

 두레자연고(이사장 김진홍·교장 임태규)는 교육 현장에서 헤매고 있는 어린 영혼들을 삶으로 가르치며 서로가 서로를 섬기고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배움터를 꿈꾸는 곳이다. 1999년 3월 5일 10명의 선생님들과 20명의 학생들로 시작된 기독교 학교다. <편집자 주>

17-기욱-생활인권부장.jpg
기대가 컸다. 한국기독교대안교육연맹 차영희 사무총장(목사)의 소개 때문이다. "기존 제도권 교육에서 길을 잃은 학생들을 성경 속의 어린 양처럼 대하는 학교인데, 이런 아이들에게 3년이 지나면 엄청난 변화가 나타나는 곳이랍니다. 교장선생님이 야전침대에서 주무실 정도로, 열정이 가득한 선생님들을 직접 가 보시면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첫인상은 기대대로였다. 본관에 있는 당구대와 노래방,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카페 등이 눈에 띄었다. 일반 고교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다. 학생들에게 상당한 자유를 허용하는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만 학교의 3층 교무실에서 만난 기욱(41)생활인권부장이 처음 꺼낸 말도 인상적이다.

"우리 학교를 먼저 소개하면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 모르나, 제 생각을 그대로 말씀 드리면 학교라기보다는 함께 생활하는 곳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해 아침에 눈을 떠 잠들 때까지 선생님들이 같이 있다 보니까 그런 느낌이에요. 학생과 선생 간에 미운 정 고운 정이 안 들 수가 없죠."

학생부장으로서의 역할을 설명하기 전에 학교 소개를 하나 더 했다.

"과거에는 선생님들도 100%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아이들과 함께해요. 저도 같은 선생이지만 개성도 강하고 본받을 점이 많은 동료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 학교의 또 다른 자랑은 선생님들이라고 늘 말하는 편이에요. 우리끼리는 교사 공동체라고 말한답니다."

‘통통 튀는 학생만큼이나 개성이 강한 교사들끼리 모였다면 좋은 점만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남들보다 출발선이 뒤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을 보며 갈 길이 머니 더 많은 것을 가르쳐야지 또는 상처 많은 아이들을 보듬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런 사람이 돼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동료들끼리 서로의 실수를 감싸주지 못했던 시절이 한때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좀 달라요."

최근에 다녀온 지리산 종주를 예로 들며 교사의 역할에 대해 말했다.

"3박 4일 산행 마지막 날에 힘이 떨어진 어떤 학생이 내려오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거예요. 대신 짐을 들어줄까 하다가 ‘한 번 끝까지 가 보지 않을래?’라고 권유하니 힘을 내 일어나 완주하던데요. 과거에는 학생들이 정상에 오르도록 다그쳤다면 지금은 아이들이 굽이굽이 산줄기를 타고 가는 등산길에 동반자 역할을 선생님들이 하고 있다고 보면 맞아요."

이제는 화제를 돌려 학생부장, 일명 학주로서의 역할과 고민을 물어보려는 찰나, 옆 교실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학생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학생자치회·기숙사 운영, 봉사·체험활동, 금연 지도 등이 학주의 역할인데, 업무 소개가 아닌 아이들의 이야기로 말해 볼게요. 좀 시끄러운 교실이 말하듯 재미있는 활동이 꽤 많아요. 학생들의 반응이 좋죠. 교과서를 접었던 한 학생이 이 학교에 와서 ‘선생님, 이제는 공부를 하고 싶어졌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보람을 많이 느꼈죠."

자연스럽게 학주로서 기억에 남는 제자 이야기를 꺼냈다.

"많죠. 중학교 수준의 영어 단어도 모르던 아이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기적처럼 들어간 경우도 있고, 학교를 뛰쳐나간 학생들이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 기억에 남죠. 그때 자퇴하지 말라는 선생님의 충고를 들을 걸 그랬다며 웃음 짓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곤 얼마나 짠한지 몰라요."

눈시울을 붉히며 가슴에서 꺼낸 이야기도 있었다.

17-기욱-생활인권부장2.jpg
"경제적 상황은 나쁘지 않은데 아빠가 없어 그런지 마음의 상처가 많았던 아이였어요. 3학년 수업 중에 어떤 일로 혼냈더니 ‘선생님이 제 아빠가 돼 주지는 못할 거 잖아요’라고 악을 쓰며 대들더군요. 잠시 말문이 막혔지만 ‘아빠는 못 돼도 나는 네 선생이잖니’라며 ‘1년 동안 날 믿고 따라와 보렴’이라고 진심을 전했더니 그 애가 바뀌더라고요. 지금도 그 아이의 근황을 듣고 있는데, 결국 진심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학년 40명의 신입생이 들어오면 금연 지도를 위해 일산화탄소 측정기 40개를 구비하는 이 학교 학주로서의 고민은 없을까?

"다들 힘들 거라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동료 교사들이 너무 많아 힘든 점은 없어요. 한 학급에 2명의 담임이 붙는 복수담임제 덕도 있어요. 아빠와 엄마로서 역할을 나눠 사랑을 주다 보니 저에게까지 오는 문제는 거의 없답니다."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2005년부터 두레자연고와 인연을 맺은 기욱 선생님은 인터뷰 말미에 꼭 이 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일상이 중요한 거 아닌가요? 하루하루 충실한 일상을 살다 보면 좋은 삶으로 이어질 것이고요. 학생들의 행복한 일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들과 함께해 행복해요. 제가 학주로서, 교사로서 우리 학교에서 배운 최고의 교훈은 기다리며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선생님의 별명은 무엇입니까.

 ▶‘타기’, ‘욱황상제’란 두 개의 별명이 있어요. 학생들이 뭐 좀 할라치면 기가 막히게 나타난다는 ‘타이밍 기욱’을 줄여 ‘타기’로 부르는데, 학주로서 이렇게 괜찮은 별명은 없죠.

 가끔은 제가 욱한다고 해, 또 국어 교사로 워낙 말을 잘해 학생들이 말로는 저를 못 이긴다는 뜻에 ‘욱황상제’라고 한답니다.

 -대안학교 선생님으로서의 자부심은.

 ▶한국교원대 선후배로 만난 아내 역시 안산의 한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습니다. 둘 다 교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죠. 게다가 지금 다니는 학교가 매우 좋습니다.

 몇 년 전 우리 학교가 등록금이 비싼 학교란 기사가 한 언론 매체를 통해 나간 적이 있는데, 이 기회에 소명하고 싶어요. 기숙사 생활비에다 특성화고교로 1∼2학년 해외수업 비용이 있어 그런 건데 그 부분은 싹 빠져 있어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