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어떠한 역경에도 절망하지 않는다. 가지가 잘려 나가고 몸통이 쪼개져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아니까."

▲ 연리목
인천 월미산 ‘평화의 나무’에 대한 예찬이다. 지난 22일 인천시 중구 월미공원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한국전쟁 당시 모진 포화에도 살아남은 ‘평화의 나무’에 대한 예찬곡 발표회다. 인천 동구 구립소년소녀합창단이 노래하고, 평화의 나무를 발굴한 최태식 인천대공원사업소장 등이 직접 노랫말을 썼다.

‘평화의 나무’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의 집중 포화 속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은 85그루의 나무 중 외관이 수려한 7그루가 선정됐다.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분수령이 됐지만, 3일 밤낮으로 퍼부은 포탄에 당시 월미산은 풀 한 포기 살아남지 못할 만큼 초토화됐다. 해발 108m의 월미산 정상 높이가 10여m 낮아졌을 정도다. 하지만 월미산에서 당시 참혹했던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체험한 이들 평화의 나무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희망의 노래를 들려준다. 월미공원 ‘평화의 나무’를 20번째 인천의 큰 나무로 소개한다.

▲ 어머니 나무
▶어머니 나무(수령 245년)=월미산 중턱에 가장 크고 웅장한 모습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월미산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것을 품어 줄 듯 평안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도 어머니 나무다. 늙은 어머니의 손등처럼 매끈하던 나무껍질은 어느새 거북이 등처럼 주름이 깊게 패였다. 최근에는 딱따구리가 나무 몸통에 깊게 구멍을 내 집을 지었다가 올빼미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 치유의 나무
▶치유의 나무(82년)=혹독한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질긴 생명력 때문일까? 어린 은행나무는 뿌리에 포탄이 박히고도 살아남았다. 지금도 가을이면 속살이 뽀얀 은행 열매를 무한정 토해 내고 있다. 심장을 닮은 은행잎은 노랗게 익어 바람에 날리고 있지만 내년 봄이 오면 또다시 푸름을 과시할 것이다. 혹독한 아픔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현명하고 강해진 ‘치유의 나무’를 통해 삶은 치열한 투쟁이 아니라 ‘적응’과 ‘조화’라는 것을 배운다.

▲ 친구 나무
▶친구 나무(100년)=월미산 산책로 중간에 위치한 정자에는 상수리나무 한 그루가 곧게 가지를 뻗고 서 있다. 유모차에 어린 손주를 태우고 산책 나온 할머니가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다.

할머니는 도토리를 주워 고사리 같은 손주 손에 쥐어 주며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도 고개를 숙이고 친구의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고려시대 문인 이제현(1287~1367)이 자신의 호를 ‘역옹’이라 칭한 것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상수리나무처럼 오랜 기간 친구로 머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장군 나무
▶장군 나무(94년)="나는 인천에서의 승리를 확신한다." 모두의 반대에도 인천상륙작전을 밀어붙인 맥아더 장군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장군 나무로 불리는 월미산 소나무는 붉은 철갑을 두른 듯 장군의 기상을 닮았다. 늘 푸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우뚝 선 장군 나무는 마치 자신의 병사들에게 지엄한 군령을 전하듯 송화 가루를 뿌린다. 도저히 닻을 내릴 수 없는 좁은 포구와 짧은 만조시간, 불리한 상황에서도 전장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처럼 이곳 소나무 역시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지녔다.

▲ 기억 나무
▶기억 나무(104년)=월미공원 입구에는 한쪽으로 크게 기운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함포에 맞아 뿌리째 뽑혀 쓰러졌지만 지금도 죽지 않고 살았다. 전쟁이 끝나고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쓰러진 나무를 도닥거리며 위로하자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것이다. 지금은 예전처럼 열매를 맺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주위 사람들은 그날의 아픈 기억을 떠올릴 때면 이곳 은행나무를 이야기하곤 한다.

▲ 향기 나는 나무

▶향기 나는 나무(101년)=우박처럼 쏟아진 포화 속에도 상처 하나 없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향기 짙은 피톤치드를 내뿜는 나무가 있다. 월미산을 찾는 이들에게 ‘대목감’이라 불리는 화백나무다. 원래 일본 자생종인 화백나무는 높이가 50m까지 자라는 키 큰 나무다. 하지만 이곳 화백나무는 포격 이후 성장이 멈춰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주변에 경쟁할 나무가 없자 스스로 성장을 멈춘 것이다. 대신 뿌리를 깊게 내려 어떠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 소생 나무

▶소생 나무(71년)=전쟁이 끝나고 커다란 줄기가 잘려 나간 왕벚나무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을 정도다. 벚나무의 원 줄기는 이미 시커멓게 불타 죽어 갔지만 네 가닥 남은 가지만은 푸른 잎을 싹 틔웠다. 그리고 봄이면 화사하게 꽃을 피운다. 마치 온 힘을 다해 생명을 전한 어미를 추모라도 하듯 눈물나게 흰 꽃잎을 흩뿌린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란 옛말이 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란 옛말이 있다. 볼품없고 목재로도 쓰이지 못하니 베이지 않고 오래 산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꼭 쓸모가 없다고 해서 나무가 오래 사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한결같았던 ‘큰 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6개월간 본보는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운영되는 창의주도형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인천 지역 114그루의 보호수 중 수령이 오래되고 생육 상태가 좋은 20그루의 나무를 찾아 ‘큰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나무와 얽혀 구전돼 온 사연 등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민족의 성지 마니산 참성단을 홀로 쓸쓸히 지키고 선 소사나무부터 ‘천년의 사랑’을 꽃피운 용궁사 할배 나무와 할매 나무, 외세의 침략을 막고 마을을 지켜 낸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등 큰 나무가 간직한 사연들은 그 자체가 인천의 역사였다. 그리고 당시의 기억을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가르침처럼 ‘쓸모’란 가치 기준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든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큰 나무는 오랜 세월 쓸모가 없어 생명을 유지해 온 것이 아니라 소중한 친구이자 친근한 이웃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지금껏 질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성장과 개발이란 이유로 우리 곁에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연속 기획물을 마무리한다. <完>

 지건태 기자 jus216@kihoilbo.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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