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어떠한 역경에도 절망하지 않는다. 가지가 잘려 나가고 몸통이 쪼개져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아니까."
‘평화의 나무’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의 집중 포화 속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은 85그루의 나무 중 외관이 수려한 7그루가 선정됐다. 최근 영화로도 만들어진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분수령이 됐지만, 3일 밤낮으로 퍼부은 포탄에 당시 월미산은 풀 한 포기 살아남지 못할 만큼 초토화됐다. 해발 108m의 월미산 정상 높이가 10여m 낮아졌을 정도다. 하지만 월미산에서 당시 참혹했던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체험한 이들 평화의 나무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희망의 노래를 들려준다. 월미공원 ‘평화의 나무’를 20번째 인천의 큰 나무로 소개한다.
할머니는 도토리를 주워 고사리 같은 손주 손에 쥐어 주며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무도 고개를 숙이고 친구의 옛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고려시대 문인 이제현(1287~1367)이 자신의 호를 ‘역옹’이라 칭한 것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상수리나무처럼 오랜 기간 친구로 머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향기 나는 나무(101년)=우박처럼 쏟아진 포화 속에도 상처 하나 없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향기 짙은 피톤치드를 내뿜는 나무가 있다. 월미산을 찾는 이들에게 ‘대목감’이라 불리는 화백나무다. 원래 일본 자생종인 화백나무는 높이가 50m까지 자라는 키 큰 나무다. 하지만 이곳 화백나무는 포격 이후 성장이 멈춰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주변에 경쟁할 나무가 없자 스스로 성장을 멈춘 것이다. 대신 뿌리를 깊게 내려 어떠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소생 나무(71년)=전쟁이 끝나고 커다란 줄기가 잘려 나간 왕벚나무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을 정도다. 벚나무의 원 줄기는 이미 시커멓게 불타 죽어 갔지만 네 가닥 남은 가지만은 푸른 잎을 싹 틔웠다. 그리고 봄이면 화사하게 꽃을 피운다. 마치 온 힘을 다해 생명을 전한 어미를 추모라도 하듯 눈물나게 흰 꽃잎을 흩뿌린다.
지건태 기자 jus216@kihoilbo.co.kr#‘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란 옛말이 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란 옛말이 있다. 볼품없고 목재로도 쓰이지 못하니 베이지 않고 오래 산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꼭 쓸모가 없다고 해서 나무가 오래 사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시간 한결같았던 ‘큰 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6개월간 본보는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운영되는 창의주도형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인천 지역 114그루의 보호수 중 수령이 오래되고 생육 상태가 좋은 20그루의 나무를 찾아 ‘큰 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나무와 얽혀 구전돼 온 사연 등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민족의 성지 마니산 참성단을 홀로 쓸쓸히 지키고 선 소사나무부터 ‘천년의 사랑’을 꽃피운 용궁사 할배 나무와 할매 나무, 외세의 침략을 막고 마을을 지켜 낸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등 큰 나무가 간직한 사연들은 그 자체가 인천의 역사였다. 그리고 당시의 기억을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가르침처럼 ‘쓸모’란 가치 기준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든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 큰 나무는 오랜 세월 쓸모가 없어 생명을 유지해 온 것이 아니라 소중한 친구이자 친근한 이웃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지금껏 질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성장과 개발이란 이유로 우리 곁에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연속 기획물을 마무리한다. <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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