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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활동이 사실 두렵죠. 괜한 소리가 아니에요. 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어 예술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것은 모든 예술인의 꿈 아닌가요. 매 순간 징글징글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작업이 이어지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조각은 제게 당연히 가야 하는 길이자 운명이랍니다."

작가 배진호(55)는 조각가이자 아티스트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예술인이다. 한때 조각가로서의 번민 속에 회화전도 열며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지만 이번에 자신의 출발점과 현재를 가늠해 보자는 의미로 그의 조각 인생을 총망라하는 전시를 열었다. 그가 30여 년 흙을 주물러 온 업(業)을 모두 보여 준다는 의미로 인천 선광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전시 제목도 ‘1984∼2016’로 붙였다.

전시 소개 글 중 그의 친구가 쓴 내용이 눈에 띄었다. ‘배진호 조각가는 술을 좋아한다. 창작세계를 고뇌하고 그 엄습하는 두려움에 술을 든다’란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창작 과정을 고뇌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어찌 예술가라 할 수 있겠어요. 맨 정신으로 작업을 하기 힘들면 동인천 작업실에서 막걸리 한 잔하고 작품 앞에 서는 편이에요. 친구는 대작(大作)을 위한 산통이라고, 누구는 순수한 예술 영혼 탓이라고도 말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해요. 무지해서 그렇다고."

전시장에 선보인 그의 역작 20여 점은 남성미가 물씬 풍긴다고 보일 정도로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아비를 잃고 울부짖는 아들의 형상, 자신의 잘린 머리가 있는 나무 도마에 식칼이 꽂혀 있는 등 그의 작품들은 실물 크기를 수십 배로 키워 내 거침없는 파격으로도 이름이 자자하다. 또 수염과 주름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함도 놓치지 않고 있다.

"좀 과장되게 보여도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편이죠. 흩날리는 바람도 조각에 담고 싶은 욕심에 조각상의 수염 1㎜라도 마음에 안 들면 원하는 대로 딱 나올 때까지 계속 작업을 해대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작품 하나에 1년이 걸리는 경우가 태반이죠."

그의 전시가 지난달 25일 시작해 7일 끝난다. 장인다운 솜씨를 보지 못한 관객들은 아쉬워할 수도 있겠다는 미술인들의 평에 배진호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내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연 전시에요. 소감은 아직도 부족하구나라는 느낌이고요."

홍익대 미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 조각과를 졸업해 1997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들은 국내 미단에서 ‘사실주의의 적통’으로 평가받고 있는 조각인 만큼 인천 지역 건물들에서도 멋지게 서 있었으면 좋겠다는 주위 사람들의 바람을 전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조형물인지 동상인지 구분 안 되는 작품은 지역에서 안 보여졌으면 좋겠고요. 무엇보다 예술인을, 전문가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만이라도 만들어져도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김경일 기자 ki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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