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역사의 혼! 천년 미래의 꿈!’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시되면서 체벌이 사라지고, 학생의 자율이 강화되면서 이를 악용한 일부 학생들로 인해 교권이 추락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100여 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굳건해진 전통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는 학교가 있다. 수원고등학교가 바로 그곳이다. 이 학교는 1909년 수원상공회의소 부속 사업의 일환으로 창립된 ‘수원상업강습소’를 모태로 설립돼 10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수원 지역의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한 지도 꽤 됐다. ‘화합과 성장을 지향하는 창의적 인재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는 수원고는 학생들 스스로 다양한 학교문화를 만들어 가는 학생회 문화와 자율적으로 설립한 다양한 동아리가 잘 구성돼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성과 뒤에는 소위 ‘학주(학생주임)’로 불리는 생활안전부장의 노력이 한몫했다. <편집자 주>

약간의 경사가 느껴지는 언덕길을 올라선 끝에 마주한 수원고등학교의 정문을 지나자 ‘矜持(긍지)와 自負心(자부심)을 지닌 水高人(수고인)’이라는 글이 새겨진 3m 높이의 돌비석이 방문객을 반겼다. 돌비석 뒷면에는 이 학교의 교훈인 ‘성실(成實)’이 큼지막하게 쓰여져 있다. 문구처럼 학생들이 얼마나 성실하고, 수원고 재학생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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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곳곳에서 마주친 학생들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네고, 스쳐 지나치는 선생님들에게도 큰 목소리로 인사하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인상적인 학생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마주 앉은 하봉수(54·체육)생활안전부장은 "다른 선생님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제가 인터뷰 대상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이내 자신의 교육철학과 학교의 교육방침을 거침없이 설명해 나갔다.

2011년부터 생활안전부장을 맡고 있다는 그는 특히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설렘과 애정을 한껏 드러내기도 했다.

하 선생님은 "대학을 졸업한 뒤 1988년 3월 처음 수원고에서 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다"며 "그때와 지금은 학교가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근래에도 학교에서 발생하는 폭력사건 등이 많이 대두되고 있지만, 사실 1980∼90년대를 되돌아보면 학교 내에 폭력서클이 존재하는 등 지금보다 더 거칠었다"며 "요즘 학생들은 그때보다 많이 순해지긴 했지만, 일부 학생들이 평소 학교폭력을 당하면서도 소극적인 행동 등을 보일 때는 오히려 예전보다 나약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 지도 방식의 변화도 설명했다. "솔직히 예전에는 거친 학생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다 보니 강한 체벌을 해도 학생들은 체벌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며 체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며 "당시의 체벌은 교사나 학생 모두 교육적 차원의 체벌로 받아들였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하지만 현재의 학생 지도 방식은 그때와는 크게 다르다고 했다. "지금은 예전과 180도 바뀌었다. 2011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이후 설사 교육적 체벌이라 하더라도 일체 금지됐다"며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학생들이 이를 악용하거나 그렇지 않았던 학생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일탈행동을 시작했고, 결국 학생인권조례가 일선 학교에 정착되기까지 3년여간은 학교와 학생 모두 혼란의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3년여 혼란의 시기 동안 ‘상벌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정해진 벌점을 초과한 학생을 대상으로 선도 조치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의 생활을 관리해 왔다"며 "하지만 비인격적인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지난해부터 상벌 프로그램 운영이 폐지된 뒤 한동안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수원고는 이 같은 어려움을 그들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통해 극복했다. "사립학교라는 특성상 교사들이 전근 등 다른 학교로 이동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학교에 대한 교사들의 애정과 열정이 남다른 데다, 담임 중심의 생활지도를 통해 학생들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어 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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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선생님은 "100여 년에 달하는 역사 속에서 켜켜이 쌓인 수원고 특유의 문화를 기반으로 학생들 스스로도 정화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수원고는 학생회를 중심으로 연간 4차례에 걸쳐 ‘건전한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 중이며, ‘교복 바로 입기’와 ‘등교시간 지키기’ 등을 통해 학생이 만들어 가는 학교문화가 잘 정착돼 있다.

하 선생님은 아이들과의 적극적인 소통도 한몫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일체의 체벌이 없더라도 교사가 먼저 학생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얘기를 들어주다 보니 어느새인가 학생들이 바뀌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며 "학생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왜 그랬을까’를 시작으로 소통과 대화 및 이해의 시선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하 선생님은 "제자들이 공부를 잘해 명문대에 진학하거나 소위 괜찮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도 좋지만, 지난 교사 생활을 통해 깨달은 점은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인성교육이라는 것"이라며 "앞으로 7∼8년밖에 남지 않은 교직생활 동안 제자들이 좋은 인성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지도하겠다"고 말한 뒤 다음 수업 준비에 나섰다.

#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좌우명은 무엇인지.

▶좌우명이라고까지 말하기엔 거창하지만 ‘늘 처음처럼 그 자리에’라는 생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교직생활을 시작한 지 30년 가까이 됐고, 사립학교인 우리 학교의 특성상 한곳에서 오래 교사생활을 하다 보니 간혹 저도 모르게 나태해질 때가 있는데 초심을 잃지 말자는 생각으로 이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변화를 통해 발전하기도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처음의 마음가짐을 실천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조창인 작가의 소설 「가시고기」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임파구성 백혈병을 앓는 아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아버지의 부성애를 그린 소설입니다.

10여 년 전에 읽었던 책을 최근 다시 읽어 보니 그 시절과 달리 ‘이 시점에서 아버지로서 교사로서 제자들과 자식들에게 얼마나 희생하며 살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부디 제자들에게 진정한 사랑과 희생정신을 심어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생들에게 불리는 선생님의 별명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불린다고 생각하시는지.

▶과거에는 불곰이라고 불렸었는데 솔직히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불곰이라고 불렸던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체육교사이다 보니 늘 얼굴도 검붉게 타고 매사 곰처럼 느리지만 묵묵히 성실하게 생활해서 그런 듯합니다.

전승표 기자 sp4356@kihoilbo.co.kr

사진=홍승남 기자 nam1432@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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