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민주주의 시스템이 이렇게나 취약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을 러시아에서 보낸 경기대학교 백승주(러시아어문학과 2년)학생은 한국에 입국하며 큰 기대를 가졌다. 눈부신 경제성장,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를 확립한 나라. 이것이 그의 머릿속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고국에 돌아와 2013년 경기대 러시아어문학과에 입학했다. 나름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학생회장까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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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의 대학생활은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의 시간이었다. 총장 선출을 두고 재단과 학생이 장기간 대치하고 있고, 러시아어문학과에 전임교수가 충원되지 않는 문제를 두고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백 군은 "대학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지금의 우리 대학과 대한민국의 시국이 평행이론처럼 판박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순실이 비선실세로 박근혜 대통령을 움직인 것과 같이 경기대 옛 재단 인사들이 학교를 좌지우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를 총장에 앉히려 한다는 게 백 군의 생각이다.

이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최순실 게이트를 따라하려고 재단과 학교가 일부러 노력하는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이 같은 갈등의 한복판에 있는 백 군에게 ‘최순실 게이트’는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취약한 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붕괴되는지, 어떤 문제를 불러일으키는지 몸소 느꼈다.

14년을 러시아에서 보낸 그는 최순실 게이트를 두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대한민국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백 군은 "우리는 지금까지 민주주의에 다양한 안전장치가 있다고 믿어 왔지만 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그것이 얼마나 느슨한 장치였는지 알게 됐다"며 "안전장치가 없는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국민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수십 년 후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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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군은 "국민 누구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는데도 정치권은 사분오열하고 있고, 검찰의 수사는 좀체 진척되지 않고 있다"면서도 "매주 토요일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드는 수백만 시민들을 보고 희망을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그에게 ‘원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묻자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러시아와 대한민국 모두 제왕적·권위적 대통령이 표준으로 여겨져 온 만큼 이제는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함께 갖춘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시절 백악관 내 청소 노동자와 친구처럼 주먹을 맞부딪히며 인사하는 사진이 공개돼 화제가 됐고, 편안한 차림으로 패스트푸드점에서 시민들과 어울리는 동영상이 SNS에 올라와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자신의 신념이나 정책에 있어서는 물러서지 않는 카리스마를 갖췄다는 평가를 함께 받는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대한민국도 이제는 양면을 두루 갖춘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백 군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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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 국민은 지금까지 대통령이라면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풍겨야 한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그런 기대가 바뀌고 있다"며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호흡하는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2016년이 어느 때보다 슬프고 분노하는 한 해였던 만큼 그는 2017년은 밝고 희망찬 해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

백 군은 "2017년에는 유럽 여행을 떠나고 싶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성장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며 "대한민국 역시 2017년은 보다 성장하고 더 큰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임성봉 기자 bong@kihoilbo.co.kr

사진=홍승남 기자 nam1432@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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