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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어(呻吟語)

김윤식 시인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05월 17일 수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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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 시인
「신음어」를 읽다 문득 눈길이 머무는 구절이 있어 옮겨 본다. 알려진 대로 이 책은 중국 명나라 때 관리 여곤(呂坤)이 지은 것으로 출간 이후 줄곧 중국 관리들의 지침서로 일컬어진 책이다. "성현(聖賢)이 천하의 사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직선적이거나 단락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현실 여건의 돌아가고 휘어지고 구부러짐에 따르듯이(委曲紆徐)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경솔하게 사물을 운영해 세상 사람들의 기대와 바람을 무시하거나 세상 사람들과의 약속을 깨뜨리는 따위의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道)를 실행한다 해도 일직선으로 행해지지 않는 일이 있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과단성 있게 해치울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도저히 직선적으로, 그리고 단락적으로는 되지 않는 경우라 할 것이다. 이것을 길을 걷는 일에 비유해 말한다면, 길이 굽었으면 굽은 대로 멀면 먼 대로 길이 생긴 그대로 따라서 걸을 일이다. 급한 나머지 자기 형편에 맞춰 길이 아닌 아무 데로나 함부로 걷을 수 없다. 그런 행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릇 세상일을 처리해 나가는 데 있어 ‘자기 위주로, 세상을 돌아보는 분별 없이, 단선적으로 서두름’을 경계하는 의미로 읽힌다. 조금 더 읽어 보자. "만일 억지로 빨리 가는 것만을 생각해 똑바르게 간다고 한다면, 북경(北京)과 남경(南京) 사이의 길을 반듯하게 직선으로 먹줄(正以繩墨)을 쳐서 그 사이에 있는 성벽을 헐고 촌락을 철거하고 강을 메우고 산을 헐어내고 한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훨씬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인정(人情)으로 보아서나 지형으로 보아서도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겸손한 자세로 착수해야(遜以出之) 할 것이다. 배운 자가 사물을 접함에 있어 생각한 바를 곧바로 행동에 옮길(徑情直行) 수만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절대 권력을 가진 전제 군주라 해도 먹줄을 쳐서 북경과 남경을 직선으로 이어 길을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은 자신의 생각이 이롭다 해도, 경솔함 없이 심려(深慮)를 통해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마도 여곤이 관리들의 머릿속에 행여라도 그 같은 독단적 생각이 스며들까 경계해서 한 말이 아닐까 싶다. 또 이런 구절에도 눈이 머문다. "자신이 지혜로운 자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남은 점점 우자(愚者)로 보이고 자신이 꾀 많은 자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남은 점점 더 용렬한 자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과 남과의 격차가 커지면 그만큼 상대를 낮춰보는 경향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오직 도리를 깨우친 사람만이 지혜로운 자이면서 남의 어리석음을 헤아리고, 꾀 많은 사람이면서 남의 용렬함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다. 인간의 능력에는 남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각기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자신만이 지혜롭고 꾀 많은 사람이라고 자만하지 말라는 단순한 의미일 것이다. 「신음어」는 여곤 자신이 쓴 서문(序文)의 말대로 "병이 들었을 때 아파서 하는 앓는 소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뜻하는 병은 육체적인 병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앓는 소리를 하게 될 때 그 괴로움을 기록해 반성하고 조심하면 다시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나 조심하지 않기 때문에 또다시 병에 걸려 괴로움을 겪는다"라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신음어의 본뜻은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못해 반복되는 반성과 괴로움을 한탄하는 말’이라 할 것이다, 여곤의 장남 지외(知畏)의 발문에 의하면 "이 책은 50여 년에 걸쳐 기록한 것으로서, 집안에 있을 때는 물론, 관청에서 바쁘게 일하면서, 또는 말을 타고 먼 길을 가는 도중, 병상에 누웠을 때, 그리고 자다가도 갑자기 눈을 떠 무엇인가 느끼는 것이 있으면 곧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음어는 여곤이 관리로서의 50년 깨달음을 적어 세상을 깨우치고자 했던 ‘경세어(警世語)’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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