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공감할 만한 삶의 원리 중에는 ‘호사다마 (好事多魔)’가 있을 법하다.

모든 바깥일과 집안일, 인간 내면의 감정이 순풍에 돛 올리듯 순조롭고 평화롭게 진행된다면 ‘일범풍순(一帆風順)’의 지상낙원이 따로 없겠지만 그럴 리는 만무하다.

일범풍순의 대척점에 서 있는 호사다마는 좋은 일에는 탈도 많고 그 좋은 시기, 그 좋은 결과는 갖은 풍파와 함께 어렵게 얻어진다는 의미가 있다.

또 세간에는 좋은 일 다음에는 나쁜 일이 도사리고 있다는 절차적 시간적 순리를 표현하는 뜻으로도 사용돼 매사에 방심하지 말고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강조와 조언을 남기기도 한다.

인간 외적인 일로 보자면 새옹지마(塞翁之馬), 내면의 감정적 측면에서는 호사다마는 희로애락(喜怒哀樂)과 닿아 있다.

이처럼 호사다마는 복잡다단한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외적, 내적, 상대적 천태만상을 절묘하게 표현해 낸 기막힌 원리가 아닐 수 없다.

일찍이 한 성자는 이 모든 것들 간의 연관성과 상대성에서 오는 원리를 간파해 ‘인생은 고(苦)의 연속’이라고 설파한 뒤 스스로 이를 해탈한 무상,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속에서 태어나 한평생 직장 생활을 하고 늙고 죽는 우리네 현대인이 무상, 무아의 경지를 추구하고 호사다마를 초월한 삶을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 현대인은 ‘호사’ 뒤에 닥친 ‘다마’에 격앙되고 통제할 수 없는 감정으로 대응하거나 여력만 된다면 그런 ‘다마’를 피해 평생 ‘호사’만을 누리고 갈구하는 삶을 택하기를 원한다.

뇌과학적 측면에서 전자는 도파민, 세라토닌, 노드아레날린으로 불리는 3대 신경물질의 부조화로 ‘다마’에 우울감, 불안, 긴장, 답답함, 폭력성 등으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찾지 못하는 타입이다. 또 후자는 지나친 낙관주의, 무사안일주의, 쾌락주의, 현실 도피주의로 대변되는 자기애(自己愛)만 강한 이기주의자로 표현될 수 있다.

결국 호사다마를 우리네 삶의 일부로 이 또한 삶의 유의미성과 나름의 가치로 겸허하고 담담하게 받아 들이지 못하면, 자칫 반사회성은 강화되고 해결 불가능한 거대한 ‘다마’가 찾아 올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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