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영화 ‘남한산성’으로 되짚어본 한중관계 정상화 유감

장순희 청운대교수/문화안보연구원 이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11월 09일 목요일 제11면

장순휘.jpg
▲ 장순희 청운대교수
영화 ‘남한산성’은 시대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영화는 역사물로서 소재는 병자호란(1636~1637년)으로 조선과 청(淸)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청의 홍타이지가 명(明)을 정벌하기 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략했고, 인조의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으나 청군의 포위전술에 무조건 항복한 치욕의 패전이었다.

 9년 전 정묘호란(1627년)으로 후금과는 ‘형제지맹’ 관계를 맺었으나 강성해진 후금은 1632년 조선에 ‘군신지의(君臣之儀)’를 강요했다. 이때 인조의 조정에서는 최명길의 화친론(和親論)과 김상헌의 척화론(斥和論)으로 국론이 분열돼 외교정책의 일관성을 갖지 못했다. 기울어져가는 명나라를 믿고 있던 조선은 척화론을 내세워 후금을 적대시하다가 1636년 4월(음력)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에 오른 청 태종 홍타이지가 조선을 징벌하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전형적인 침략전쟁으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명에 대한 전통적 사대외교노선의 연장선상에서 오랑캐인 청에 대해 척화하는 것은 국가적 대의명분이었다. 그러나 병자호란 결과는 인조가 엄동설한 중 1월 30일 남한산성에서 나와서 청 태종에게 ‘3배9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항복한 패전이었다. 인조는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조선은 일방적으로 11조항의 화약(和約)을 접수해야 하는 치욕을 당했다. 그 치욕의 11조항에는 형제관계에서 군신관계로, 명과 단교, 왕족 인질, 명정벌시 원군파견, 귀족 간 혼인, 세폐(歲幣) 상납, 백성 포로 60만 명 심양 이송 등 주권박탈과 내정간섭의 비통한 요구가 담겨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관점에서 영화 ‘남한산성’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하자면 첫째, 병자호란의 역사적 발발 배경을 누락한 점이다.

 따라서 ‘남한산성’은 ‘프롤로그’에서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사실에 입각해 객관적으로 전제한 후 시나리오가 전개됐어야 한다. 청의 침략은 분명히 인접 국가에 대한 도발이며, 조선의 평화를 깨는 나쁜 짓이라는 점에서 무기력한 패배 분위기보다는 오랑캐를 섬멸하겠다는 저항 분위기로 시작했어야 한다. 둘째, 왕명에 따른 근왕군의 군사적 반격 동향을 무저항으로 왜곡한 점이다. 영화에서 근왕병이 전혀 오지 않은 것으로 묘사가 되는데 사실적으로 강원감사 조정호가 7천여 명, 원주 권정길이 1천여 명, 함경감사 민성휘 7천여 명, 충청감사 정세규, 전라감사 이시방은 6천여 명, 화엄사의 승병 200여 명 등 많은 근왕병이 진격해 광교산전투, 김화전투, 쌍령전투, 강화부전투 등 강력한 저항을 했다. 결코 청군이 무혈입성하거나 무저항으로 전승한 것은 아니다. 셋째, 국가의 존망이 더 소중하다는 애국적 사회가치를 폄훼한 점을 거론할 수 있다. 한 대장장이의 무용담을 삽입해 당시 권력층의 무능함을 비웃었고, 한 여아의 안전을 찾아주는 것이 국가의 존망을 지키려는 전쟁보다 의미 있다는 식의 메타포를 복선(伏線)으로 전개해 무정부주의를 주장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민들레가 피는 봄을 이미지화해 백성을 위한 굴욕적 평화가 국가를 위한 전쟁보다 낫다는 불편한 영상이 곳곳에 있었다. 전투장면에서 청군에게 죽임을 당하는 군사들과 백성들의 모습과 당시 조정 신료들의 탁상공론을 비교하면서 무능한 왕과 대신들과 전쟁 능력을 비판하기도 했으나 그 모든 비극의 제공자는 우리가 아니라 청이라는 분명한 피해자의 적개심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 ‘남한산성’은 역사 영화 왜곡의 시범작품이라고 평하고자 한다. 이렇게 영화가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면 상영 후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한 후유증은 고스란히 관객인 국민의 몫이 된다. 영화 작품의 상업성, 흥행성에 중점을 두기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문화예술적 진실의 메시지가 내재된 영화작품이기를 기대하고자 한다. 자칫 전쟁의 허무주의가 팽배해진다면 국가라는 사회 가치를 지키기 위한 모든 행위가 무용지물로 평가절하될 수도 있는 위험한 국민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기에 유의해야 한다.

 지난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 협의 과정에서 밝힌 ‘3불정책’은 마치 영화 ‘남한산성’ 후속편을 보는 듯했다. 근본적으로 사드 배치는 한미동맹에 근거한 주한미군의 북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의 방어 시스템으로서 한국의 책임이 아닌 미국의 군사 업무인 것이다. 중국의 보복에 20여 조 원 이상의 피해를 받고도 중국의 사과도 없이 사드 추가 배치 배제,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의 거부를 수용한 것은 한미동맹에 모욕을 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번 조급한 외교성과는 남한산성에서 항전을 포기한 삼전도의 굴욕은 아닌지 돌이켜 봐야 한다.


기호일보, KIHOILBO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저작권자 ⓒ 기호일보 (http://www.kihoilbo.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