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야! 잘 지내제? 올해 송년회를 12월 2일쯤 하려고 하는데, 시간 쫌 돼나?"라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휴대전화 문자로.

 그동안 이들 고향 친구들은 수없이 나에게 문자와 SNS를 통해 "만나자. 보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정말 마음 같으면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여러 번 생기기도 했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옛 고향 친구들과의 추억은 그 어느 친구들보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고향에서 학교를 다녔고, 고교부터는 여러 지역을 돌며 유학을 했다. 그래서 다른 고향 친구들과는 달리 많은 추억거리가 없지만, 역시 이들 친구들과 15년 이상 고향 시골에서 지내며 아직도 친구들과 만들었던 옛 추억들이 생생하다. 동네 산과 들을 뛰어다니던 기억, 학교를 다녀와 친구들과 함께 집에 있는 소를 몰고 강가로 쇠먹이를 다니던 추억, 과수원에서 여러 가지 과일을 서리하던 기억, 경운기를 끌고 들과 밭일을 하던 추억 등등.

 지금은 상상도 못할 여러 가지 일들을 이들 고향 친구들과 함께 했다. 이런 친구들과 20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이 친구들이 올해는 꼭 보자고 한다. SNS에 올라온 글과 사진들을 보니 친구들 역시 나처럼 세월의 무수함을 이기지 못한 것 같고, 또 이들도 세월의 풍파 속에서 많은 역경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비록 올해도 역시 고향 친구들과 만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인천이라는 지역에서 경북 고령은 마음만 먹으면 4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런 거리를 두고 20년 동안 고향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너무 무심하고 친구들에게 소홀했다. ‘바빠서, 거리가 멀어서, 삶이 힘들어서’ 등의 말은 너무 구차하고 무성의한 변명이다. 그냥 친구들에게 ‘미안함’이 앞설 뿐이다. 친구들에게 "다들 니를 많이 보고 싶어 한다. 언제든지 내려오면 꼭 연락해라. 꼭 모임이 아니더라도 고향으로 오면 함 보자꾸나"며 연락이 온다. 너무 고맙다. 올해가 지나면 나름 시간이 좀 날 것 같다. 그러면 시간을 내 제일 먼저 고향 친구를 만나러 갈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기다려 줘 친구들아! 그동안 내가 소홀했던 점에 대해 사과할 겸 내가 소주 한잔 살게. 보고 싶다.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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