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1일 법원 집행관이 나와 덕적도 양옥금 씨 집을 굴삭기로 부수고 있다.  <양옥금 씨 제공>
▲ 지난달 21일 법원 집행관이 나와 덕적도 양옥금 씨 집을 굴삭기로 부수고 있다. <양옥금 씨 제공>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주민 양옥금(69) 씨는 지난달 21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인천지법 집행관사무소 직원들이 굴삭기로 양 씨의 집을 때려 부순 것이었다. 집터(529㎡)가 양 씨에게 땅을 판 김모 씨 딸(57) 명의로 바뀌었다는 법원 설명에 양 씨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

하루 아침에 손때 묻은 집을 잃은 양 씨는 주민들 도움을 받아 ‘북리경로당’에서 지낸다. 양 씨 집터 부동산등기에는 이미 2013년 6월 13일 확정판결로 소유권이 김 씨 딸로 넘어가 있었다. 이것도 모르고 양 씨는 꼬박꼬박 재산세를 내고 있었다.

김 씨 딸과 양 씨는 악연이다. 1995년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에 따라 양 씨는 농지위원 확인서를 받아 땅 소유권 이전을 신청했다. 양 씨는 1982년 김 씨에게 덕적면 북리 181 등 14개 필지를 사면서 집터를 포함한 일부 땅을 ‘미등기’ 상태로 뒀다. 김 씨가 전 주인에게서 등기 이전을 해놓지 않은데다가 대부분 농지고 소규모였다.

이 사실을 안 김 씨 딸은 양 씨를 따라 농지위원 확인서를 받아 소유권 이전 신청한다. 엉뚱하게도 소유권은 먼저 신청한 양 씨가 아니라 김 씨 딸에게 주어진다. 양 씨는 "옹진군 지적계 공무원이 당시 김 씨 딸에게 허위공문서를 만들어줬다"며 "당시 농지위원들은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양 씨는 1996년 김 씨 딸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벌였고 1999년 6월 10일 인천지법에서 승소해 집터를 포함한 농지 8필지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쳤다. 등기원인은 ‘1982년 2월 12일 매매’로 기록됐다. 검찰도 김 씨 딸 죄를 인정해 기소하려고 했지만 1996년 12월 3일 김 씨 딸이 코스타리카로 도망쳐 기소 중지(1997년 12월 29일)했다. 이렇게 사건이 끝난 줄 알고 양 씨는 2001년 집(148㎡)을 지었다.

그러나 국내로 돌아온 김 씨 딸은 2004년 8월 30일 인천지법의 판결 공시 송달(1999년 6월 23일)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추후보완항소장을 제출한다. 항소심, 상고심 모두 김 씨 딸 손을 들어줬다. 이때 양 씨 대리인으로 A법무법인이 참여했는데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양 씨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A법무법인은 양 씨가 다른 소송 때문에 맡긴 도장을 써 위임장까지 허위로 작성했다.

검찰도 이상했다. 2004년 12월 인천지검 박모 검사가 양 씨를 불러 사건이 오래돼 종결해야 하니 합의서를 써달라고 했다. 아무 것도 모른 양 씨는 검사 말대로 합의서를 써줬다. 이 때문에 김 씨 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최근 양 씨는 A법무법인이 허락 없이 소송을 진행해 엉뚱한 판결로 집이 부숴지고 쫓겨나 억울하다고 국민신문고에 진정했다. 이에 대해 인천지검은 사실관계가 2006년 1월 이전 종료돼 공소시효가 지났고 형사처벌할 구체적 사실 적시가 없어 진정을 종결한다고 통보했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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