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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로가(歎老歌)

한동식 사회부장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7년 12월 12일 화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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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식 사회부장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길 백발 막대로 치였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 듯 불고 간데 없다/저근 덧 빌어다가 부리고자 머리 위에/귀 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고려 말 성리학의 기초를 닦은 우탁(禹倬)이 지은 시조 ‘歎老歌(탄로가)’다. 학문에 매진하다 어느덧 백발이 된 자신을 발견하고 인생의 덧없음과 늙음을 안타까워하며 읊은 시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찾아오는 늙음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간절한 소망과 안간힘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막으려 해도 막아질 수 없는 게 세월이고 늙음이다. 느낌 없이 넘기던 달력도 달랑 한 장 남긴 이때쯤이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 날짜인 31일로 향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또 한 해를 보내는 것의 아쉬움과 함께 나이를 먹는 늙음의 두려움 때문이다. 그야말로 탄로가가 절로 나는 시기다.

 이제 갓 지천명을 넘어선 나이에 어르신들 앞에서 건방지게 늙음을 논하는 것은 좀 이르기는 하지만 늘어나는 흰머리와 예전 같지 않은 움직임은 스스로 늙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새 그렇게 됐다. 늘 청춘인줄 알았는데 말이다. 뭣도 모르고 까불고 나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고리타분한 꼰대가 된 지도 오래다. 그리고 늙어가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고 반기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들고, 죽음으로 가까워지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늙음은 두려움이다.

 의학기술로 수명은 늘어났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이 질병·사고 등으로 건강하게 지내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고 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생명표’에 따르면 남녀 전체 평균의 기대 수명은 82.4세로 이 중 건강하게 보내는 기간은 64.9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17.5년은 병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생명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했다.

 늙음이 속상한 이유다. 그럼에도 단순히 나이가 들어 늙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늙음은 천덕꾸러기 신세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는데 돌보는 이 없이 고독과 싸워야 하고, 맘대로 안 되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운데 세상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몸을 낮춰야 한다. 최근 불거진 ‘노인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이 그렇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 이용이 지하철의 적자 폭을 늘리고 있다는 얘기다. 무임승차 노인들을 가리켜 ‘지공거사(地空居士)’라는 조롱도 쏟아낸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인이라는 뜻의 은어다. 낯부끄러운 놀림이다. 이에 질세라 TV나 라디오 등 방송매체는 물론 신문, 인터넷 등에서도 노인무임승차가 연일 뉴스거리다. 각 지역별 지하철 누적적자 통계와 노인무임승차 비율을 비교해 뉴스를 만들고 있다. 노인들이 하루아침에 지하철 적자의 주범으로 전락했다. 노인들 입장에서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일 게다.

 궁금한 게 있다. 노인들이 무임승차를 안 하면 지하철 적자가 줄어들까? 낮 시간 텅 빈 지하철에 노인들이 무료로 이용한다고 지하철 적자가 늘어날까? 노인들이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으면 지하철이 흑자가 될까? 황당한 질문일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노인 무임승차가 지하철적자의 결정적 원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근본적인 적자 원인은 시설물 유지보수와 개량 등에 투자하는 비용 때문이고 노인무임승차를 줄인다고 적자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수도권 지하철이 광역화되면서 지하철은 노인들에게 인기 있는 교통수단이 됐다. 지하철 여행을 통해 또래도 만나고 풍경도 보면서 무료하고 우울함을 잊기도 한다. 지하철을 이용한 노인일자리도 생겼다. 그래서 노인무임승차가 노인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노인들은 ‘경로우대’가 아닌 ‘사회적 부담’이 됐다.

 경남 창원터널 화물차 폭발사고 이후에는 고령운전자들이 표적이 됐다. 고령운전자들의 면허갱신을 규제하거나 아예 영업용 운전은 그만두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면허반납을 유도하면서 일본의 예를 들기도 한다. 공감되는 얘기지만 늙음이 슬픈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10여 년 후엔 노인 대열에 들어선다. 존경은 아니더라도 공경받는 노인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서 늙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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