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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악취 잡고 GCF 유치… 愛仁 정신 빛난 ‘마이 라이프’

공무원 퇴직 후 새 프로젝트 도전하는 박정식씨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2018년 01월 02일 화요일 제3면

"지천명이 어제 같은데 내일 모래 환갑이라니 믿을 수가 없네요. 그만큼 퇴직 전 10년은 제게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요즘은 애(고양이)들 밥 주고, 낭구(나무)하느라 정신 없어요."

 박정식(60·강화군 불은면) 씨는 퇴직 후 인생이 더 즐겁다.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바쁘다. 요즘 일거리는 월동 준비다. 땔감 구하고 장작 패다 보면 끝이 없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고양이 밥부터 챙기고 자신은 그 다음이다. 강화로 터전을 옮겨와 살면서 들에 살던 고양이들이 그를 찾아 왔고, 거둬 먹이다 보니 지금 열 마리 정도 마당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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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는 예전(공직) 활약상에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 한다. 지난 일보다 앞으로 월동 준비가 더 바쁘단다. 산 밑에 자리 잡은 그의 전원주택은 겨울 추위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한 땔감 구하기와 장작패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아마도 그가 오는 손님마다 마당에서 대접하는 바비큐 파티 때문인 것 같다. 솔잎과 장작을 섞어 돼지고기를 구워내면 맛이 일품이다.

 기자가 찾은 날도 어김 없이 돼지고기 바비큐를 내왔다. 집에 들어서자, 그는 아들 내외 자랑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자신이 30살에 결혼했는데 아들도 30살에 장가 갔다며 즐거워했다. 김포에 사는 아들 내외는 박 씨 전원주택을 자주 찾아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의 집에는 예전 녹색기후기금(GCF) 유치 때 함께 하던 직원들도 방문해 바비큐에 소주를 마시며 옛 생각에 잠긴다. 이럴 때면 꼭 GCF 유치 TF로 돌아가 버린다. 박 씨는 우스갯소리로 20여 년 전 노후를 위해 사둔 강화 땅이 오르지 않아 억울해 한다.

 다른 곳을 추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노후생활 지역으로 인천을 선택했다. 공무원으로 연을 맺었지만 인천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풀리면 그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이 때문에 요즘 월동 준비도 힘을 쏟지만 프로젝트 구상과 설명회를 위한 컴퓨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일복이 터진 운명에서 못 벗어나는 모양이다. 이번 프로젝트도 본인이 원해서 하는 게 아니다. 주변에서 박 씨의 능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부탁해 일을 해보려는 것이다.

 그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단계가 아니라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없지만 산뜻한 일이라 새롭게 출사하는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전원생활과 병행하려면 공직생활 때보다 더 부지런해야 할 것 같다"고 너털웃음을 보였다.

 사실 박 씨는 송도국제도시에 GCF를 유치한 주역이다. 퇴직 전까지 인천시 GCF전략과장을 맡아 지구촌을 누볐다. 그는 1986년 해양경찰청 소속 환경직으로 처음 공직에 발을 내디뎠다.

 공무원 붐이 일기 시작한 때라서 경쟁률은 무려 40대1이었다. 박 씨의 아버지는 마도로스(선장)였다. 그는 "아버지가 부산 수산대학교에 들어간다니 당연히 해양 관련학과로 가는 줄 알고 기뻐했다"며 "전공이 ‘환경공학과’라는 것을 알고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수산대(현 부경대) 환경공학과 3기인 박 씨는 그때 선택을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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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인 그가 인천을 위해 활동한 것은 1992년부터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유조선 사고로 인해 기름이 누출되는 것을 막고자 유조선(5천t 이상) 이중 선체를 의무화하면서 환경직이 지자체로 이관됐다. 이때부터 박 씨는 ‘애인(愛仁) 정신’을 실천했다.

 그는 인천으로 옮긴 지 3년 만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1995년 남동인더스파크 유수지는 각종 오·폐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남동구 환경지도 팀장이던 박 씨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가벼운 전략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종합관리계획을 수립해 하나 하나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하수 관거와 우수 관거가 섞여 잘못 접합된 사실을 하수도에 직접 들어가 확인했다. 관거 오류를 잡아내고 갈대, 부레옥잠 등을 심어 2년 만에 ‘수질·악취’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수질분야 전문가라는 평도 이때부터 따라왔다. 박 씨 활약은 모두가 어려울 때 더 빛났다. IMF 시절인 1999년 부평구 환경지도 팀장을 맡아 인천 전체를 뒤집은 ‘방일산업 물엿 냄새’를 잡아 냈다. IMF지만 시민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이끌어냈고, 개선된 공법을 내놓게 해 냄새를 없앴다.

 2000년 부평 일대 걸레 썩는 냄새도 해결했다. 공정마다 찾아 다니며 냄새를 확인했고, 엔진 연마공정에서 절삭류 산화·부패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IMF라 어려워진 대우자동차가 절삭류 처리비용을 아꼈기 때문이다. 그가 개선 명령을 내리면서 걸레 썩는 냄새는 없어졌다.

 GCF 유치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다. 전담 팀장, 직원과 한마음 한뜻으로 유치전을 벌였다. 독일이 10배 가까이 좋은 조건을 내놨지만 박 씨와 그의 팀 열정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박 씨 팀은 2012년 8월 스위스 제네바 GCF 1차 이사회에 참석해 송도 유치 타당성 등에 대해 시청각 설명회와 각종 홍보활동을 했다. 한국·중국·일본 등 3국 CO2 발생량과 동남아에 UN기구가 없는 점, 인구가 49억 명인 아시아가 기후변화에 가장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박 씨 팀과 시가 절실히 움직이자 정부도 반응했다.

 2012년 10월 18∼20일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2차 GCF 이사회는 첫날 대통령이 직접 만찬을 준비해 줬다. 기획재정부와 환경부, 외교부도 각개전투식으로 도와줬다. 송영길 전 시장은 러시아, 영국 등 이사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해 줬다.

 결국 둘째 날 성과를 맺었다. 국내 첫 UN기구를 유치해 냈다. 이 성과는 송도를 명실상부한 국제도시로 만들었다.

 현재 송도에는 유엔아태경제사회위원회(UNESCAP) 동북아사무소 등 유엔 산하 기구 9개, GCF, 세계은행(WB) 한국사무소 등 모두 15개 국제기구 사무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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