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관리사무소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원 인력감축 계획을 주민들에게 전달한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 최근 관리사무소가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원 인력감축 계획을 주민들에게 전달한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203동에 사는 고등학생입니다. 평소 경비아저씨들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택배 보관부터 분리수거를 도와주거나 무거운 짐을 함께 옮겨주기도 했습니다. 학업에 지친 저에게 격려의 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따뜻한 공동체를 위해 그리고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투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최근 아파트 경비 감축을 추진하는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어느 고등학생의 글이다. 고교생의 대자보는 곧 떼어졌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큰 울림이 되고 있다.

이 아파트는 최근 단지 내 ‘경비인력 감축’과 ‘CCTV 등 시설물 보강’ 등의 내용을 담은 안내문을 각 가정에 전달했다. 현재 이 아파트에는 26명의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다. 총 13개의 동에 2명의 경비원이 배치돼 24시간 맞교대 방식으로 하루씩 돌아가며 근무에 나선다. 이들은 각 동 앞에 마련된 경비실에서 주민들에게 배달 온 택배보관 및 관리는 물론 주차관리와 쓰레기 분리수거도 발 벗고 나선다.

하지만 새해 첫 급여일이 다가오면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올해부터 최저임금이 7천530원으로 인상되면서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인력 감축을 들고 나와서다. 최저임금 증가 폭인 16.4%만큼 인건비도 늘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인력 감축이 강행되면 많아야 6~7명 정도만이 경비직을 유지할 수 있다.

한파주의보가 발령된 23일 만난 한 경비원은 "70세가 넘은 나이에 여기서 그만 두면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도 없다"며 긴 한숨을 쏟아냈다. 얼굴에는 하고 싶은 말이 한 가득이지만 더 잇지는 않았다. 그는 주민이 부탁한 재활용 쓰레기를 말없이 분리수거했다.

주민 A(49)씨는 "안내서를 보고 계산해보니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각 집마다 6천 원 정도만 더 내면 되는 수준"이라며 "아침에 고등학생이 붙인 대자보를 보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관리사무소장은 "이곳은 30년 전부터 경비원 시스템을 이어오고 있다"며 "경비인력을 감축하면 관리비가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한편, 이 아파트는 24일까지 주민 찬반투표를 거쳐 인력감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병기 기자 rove0524@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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