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죽는 거야, 더러운 외계인 새끼!"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 종합촬영소에 만들어진 영화 「지구를 지켜라」(제작 싸이더스)의 세트장에는 극중 병구역의 신하균과 병구가 외계인으로 지목한 강사장 백윤식의 혈투가 한창이다.

천장에 달린 모니터와 녹색, 빨간색, 무색의 약품이 들어있는 비커에 겉보기에도 복잡해보이는 컴퓨터 시설이 널려있는 이곳은 화학회사를 운영하는 강사장의 실험실. 병구는 이곳이 안드로메다 왕자와 교신하는 강사장의 비밀 기지라고 굳게 믿고 있다.

검은색 비옷에 폭탄이 들어있는 허리띠, 검정 장화에 전선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자까지 쓴 신하균의 모습이 꽤나 엽기적이다. 하지만, 분홍색 원피스 미니스커트 차림의 백윤식에 비하면 새발의 피. 빡빡 밀어버린 머리에 목에는 개목걸이까지 차고 있는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의상팀이 인터넷 성인물품 사이트에서 어렵게 구했다는 빨간 하트 무늬의 박스형 팬티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단편영화 「2001이매진」으로 알려진 장준환 감독의 장편 데뷔영화다.

자기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 외계인의 지구파괴 음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청년 병구가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믿는 악덕 기업주 강사장을 납치해 지구를 구하려한다는 한편으로는 황당하고 한편으로는 '말 되는' 스토리의 영화다.

「킬러들의 수다」,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등 관객들을 좀처럼 실망시키지 않는 배우 신하균 외에 「서울의 달」이나 「파랑새는 있다」 등 TV드라마에서 인기를 얻다 몇 해 전 영화「불후의 명작」에서 에로영화 제작자역으로 충무로에 얼굴을 내밀었던 '중견 연기자' 백윤식의 '본격 스크린 데뷔'가 눈길을 끈다.

병구를 사랑하는 곡예사 순이역으로 출연하는 여배우는 아나운서나 「로드무비」의 남자배우 황정민과 동명이인인 연극배우 출신의 황정민이다.

"인물들 다 적셨어요?" 조감독의 확인 작업이 끝나고 감독의 '레디' 사인이 떨어지자 배우 뒤편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동시에 천장의 스프링클러에서는 물이 쏟아진다. 흠뻑 젖은 채로 두 배우의 몸싸움이 시작되고 분노한 표정의 신하균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같이 죽는 거야, 이 더러운 외계인 새끼!"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스태프 들이 두 배우의 몸을 결승점 들어온 마라톤 선수 대하듯 수건으로 감싼다. 이날 촬영분은 실험실에 불이 나 스프링클러가 터진 후 벌어지는 상황으로 배우들이나 카메라 감독이나 모두에게 쉽지 않은 장면이다.

난로 앞에서 담뱃불로 추위를 녹이는 두 배우에게 감독의 입에서 냉정한 주문이 떨어진다. "약간 더 악이 받쳐야지, 한 번 더 갑시다."

지난 5월 21일 크랭크인해 강원도 태백과 이곳 부산을 배경으로 촬영된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이달 말까지 촬영을 마치고 2003년 구정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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